국제분쟁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곳이 우리 집이다. 한지붕 다국적을 표방하는 식구들이 자국을 대표(?)하는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어 유엔이 따로 없다.
배추만 해도 그렇다. 친정어머니는 "한국 배추 사오거라. 김치 담글란다" 하신다 . 양배추를 사지 말라는 말이다. 중국사위는 김치담는 나파(Napa)를 차이니스 캐비지라고 부른다. 같은 채소가 부르는 사람에 따라 국적이 바뀐다.
수박도 마찬가지다. 크고 길다랗게 풋볼같이 생긴건 미국 수박이고 작고 동그랗고 단 맛이 나는 건 한국(?)수박이다. 씨가 많고 속이 퍼석한 것은 미국 오이고 길고 가늘고 아삭거리는 건 한국 오이다.
한국에서 낯이 익었던 노란색에 흰 줄있는 참외는 산지를 따질 것도 없이 한국맬론이다. 그로서리에 멀쩡하게 '차이니스'라고 표기된 것들조차 할머니 손에 들어가면 국적이 바뀌니 남편 쪽에서 보면 불공평하기 그지없다.
다행인건 차이니스나 코리안이라고 이름이 붙으면 미국채소나 과일보다 야물고 맛있다는데 두사람이 의견일치를 본 것이랄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이치가 여기에도 통한다. 과일과 채소가 이러니 민족분쟁은 더 심각할 수 밖에!
혈통에 관한 아이들의 셈법은 더 기막히다. 부모에 관계없이 미국에서 태어나면 반은 일단 미국사람으로 간주해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키워주신 할머니 영향을 받아 한국화됐기 때문에 남은 반의 반 즉 사분의 일은 한국쪽으로 넘어간다. 그다음 남은 사분의 일을 공평하게 반으로 갈라 아빠 엄마 나라로 나누어 합산하면 한국은 팔 분의 삼 중국은 팔 분의 일이 된다. 남편 쪽에서는 속터질 일이지만 한국이 아빠 혈통인 중국을 가볍게 눌러 '키운 정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세계 도처에서 1억4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떠나 살고 있다. 미국인구의 11%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합법적인 미국 이민자는 112만2373명에 달하며 그 중 60만4280만 정도가 미국시민이 된다. 시민권을 취득한 동양인 수는 23만7724명. 인도가 제일 많고 한국은 월남 중국에 이어 네번째다.
"미국은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고 여러 민족들이 모여서 된 국가다." 린든 잔슨의 말이 새롭다. 자유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1세기가 넘도록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는 자들의 길잡이가 됐다. 원래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라는 타이틀로 제작된 여신상은 프랑스 작가 바르톨디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 여신은 오른손에 횃불을 왼손에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머리에 씌여진 관의 일곱개 첨단은 7대양 6개주에 자유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상징한다.
"자유를 갈망하고 지치고 가난한 자들을 내게 보내거라. 너희 땅에서조차 집없이 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이여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황금의 문앞에서 횃불을 높히 밝히리라." 자유의 여신상에 적힌 시인 엠마 라자러스의 글이다. 지금도 전세계 이민자 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꿈을 찿아 미국 땅을 밟는다.
여러가지 다양한 재료가 섞인 샐러드는 보기 좋고 맛있다. 거기에 입맛에 맞는 드레싱을 얹으면 더욱 제 맛이다. 미국은 거대한 샐러드 보울이다. 산지가 다른 다양한 종류의 채소들을 서로 다치지 않게 잘 섞어 아메리칸 드림이 담긴 드레싱을 섞으면 '자유'와 '개척정신' 그리고 '번영'에 이르는 미국의 건국정신에 도달한다. 다양한 재료들이 제맛을 내며 함께 어우러져야 독특한 향기의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어디서 왔느냐보다는 어떻게 어울려사느냐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