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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임 박사와 함께하는 상식기행] 에비타 시체 꼬박 1년 걸려 미라작업

Los Angeles

2006.07.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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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의 환생

1971년 마드리드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존 페론이 한 테이블에서 페론의 새 부인인 이사벨과 19년 전 죽은 두번 째 부인 에비타와 함께 식사하는 기이한 광경이 목격되어 전 아르헨티나인들을 흥분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 방부처리된 에비타의 시체

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1952년 에바 에비타 페론이 32세의 젊은 나이로 암에 걸려 죽었을 때 존 페론은 파드로 아라 박사에게 에비타의 시체를 방부처리하도록 지시했다. 아라 박사는 그녀의 피를 알코올로 그리고 나서 글리세린으로 바꾸었다. 이 미라 작업에는 꼬박 1년이 소요되었으며 그 댓가로 아라 박사는 10만 달러를 받았다. 에비타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정식으로 안치되었을 때 200여만 명의 국민들은 유해 앞에서 오열했다. 그러나 에비타가 묘지에 묻히기 전에 페론은 국왕 자리에서 쫓겨나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 전세계로 떠도는 에비타의 유해

새 아르헨티나 정부는 에비타의 유해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노동 연합 본부의 63호에 안치시켰다. 그러나 몇 달만에 새 정부도 국민들의 반란으로 무너졌을 때 에비타의 유해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에비타의 관은 반 페론주의자들에 의해 단단히 봉해져 몇 달 동안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의 창고 안에 그 후에는 구 서독의 빈으로 운송되어 아르헨티나 대사관의 창고 안에 보관되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밀라노로 옮겨졌다가 결국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밀라노에 있는 무소코 공동묘지 86호에 묻혔다.

- "에비타는 단지 잠자고 있을 뿐이다"

1971년 한 스페인 정보요원에게서 에비타가 밀라노의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소식을 접한 페론은 당장 무덤을 파헤쳐 관을 마드리드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에비타의 관을 연 페론은 눈물을 흘리며 "에비타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잠자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외쳤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19년 전처럼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페론이 종종 세 번째 부인인 이사벨과 두 번째 부인인 에비타와 함께 밤늦게 저녁식사를 했다는 소문이 생겨난 것이다. 일년 후 페론은 망명생활을 끝내고 조국 아르헨티나로 돌아가 권력을 잡았다. 2년 후인 1974년 페론이 죽은 후 이사벨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사벨은 마드리드에 두고 온 에비타의 영해를 아르헨티나로 옮겨와 이번에는 존 페론의 옆에 나란히 안치시켰다. 사후 22년만에 에비타는 영원히 숨쉴 곳을 찾은 것이다. 오늘날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코레타 공동묘지의 특별구역인 지하 묘지에 묻혀 있다.

▷영감을 불러일으킨 클라라 슈만

슈만의 낭만적 음악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은 당시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었다.

▷위대한 작품뒤에는

제임스 조이스에게 '율리시즈'를 쓸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 인물은 실비아 비치라는 여성이었다.

▷생물학적 우월성

남성에게는 하나뿐인 X염색체를 여성은 두 개씩 갖고 있다는 점이 여성의 생물학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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