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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빈의 이미지로 읽는 세상

New York

2006.09.0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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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아스토리아



천신만고 끝에 얻은 보금자리

아스토리아서 본 '빌딩 숲'





서울에서 5개월간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나의 정겨운 스튜디오가 반기고 있다. 예일대 졸업 후 첼시 26스트릿에 있는 지도교수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되어 이사를 준비했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나는 뉴욕 집값은 너무 비싸 당연히 룸메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적여 찾아낸 곳이 뉴저지에 있는 원베드 아파트였다. 원래 유학온 어린 학생이 혼자 사는 아파트였는데 자신이 거실에 살테니 내가 방에 살라는 것이었다.

얘기 중에 그 학생은 장기 체류를 원하였지만 우선 내가 단기체류를 원하니 그렇게 하자고 하며 선뜻 구두 계약을 했다. 이곳저곳 방을 보러 다니다 지친 나는 이를 믿고 뉴헤이븐의 살던 집에서 나간다고 통보를 하고 이사날에 맞춰 짐 정리를 시작했다.

이사 이틀 전 확인차 전화를 했는데 왠일인지 그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하고 음성메시지를 남겨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에 당시 구두 계약이 문제였던거 같고 나에게 통보도 없이 장기 체류를 원하는 사람이 그 후에 나타나자 다시 계약을 한 것 같다. 추후 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와 계약 후에도 계속 방을 내놓았었다.

너무 쉽게 사기아닌 사기를 당한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다음날 기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 다시 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아스토리아에 있는 2베드 아파트였다. 집 주인은 그동안 혼자 살았으나 자신은 집에 거의 없기 때문에 방 두 칸에 각각 룸메이트를 들이고 자신이 거실에서 생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열쇠는 준다고 했으나 인상이 좋은 분인거 같아서 계약서를 쓰지도 않고 열쇠도 받지 않는 실수를 반복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음날 동네에 이삿짐 트럭 렌트하는 곳으로 갔다. 내가 원했던 트럭은 두 번째로 작은 차였으나 직원은 지금 주를 벗어날 수 있는 차중에 그 트럭이 여분이 없으니 가장 큰 트럭을 그 가격으로 몰고 가라는 것이다.

난감했으나 도리가 없어 생전 몰아본 적이 없는 거대한 트럭을 몰게 되었다. 힘들여 짐을 싣고 오후 7시쯤 뉴헤이븐을 출발했다. 저녁시간쯤 아스토리아에 도착하겠다고 약속했던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으나 이렇게 큰 트럭을 몰아본 적이 없는데다 지리를 몰라 한 손에는 인터넷에서 뽑은 지도 종이를 들고 있었으니 천천히 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I-95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소나기가 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와이퍼가 망가져 한번 작동시킬 때마다 한 번씩만 비를 쓸어내리는 것이었다. 날은 어둡고 비는 계속 오고 와이퍼를 계속 작동시켰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지도를 계속 확인하였음에도 퀸즈에 들어서 길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늦게나마 집 주인을 깨우고 주차한 거대한 트럭을 보여주었더니 기겁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짐을 수용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룸메이트를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짐이 보는 만큼 많지 않고 바닥에 쭉 깔아놓은 것 뿐이라고 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루 밤은 재워 줄테니 다른 방을 알아보라고 하였다.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다음날부터 퀸즈 부르클린 등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와중 그분에게 전화가 왔다. 직장에 가던 중 집 앞을 쓸고 있는 어떤 유럽계 아주머니에게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있다며 나보고 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주머니가 전화를 통 받지 않아 저녁 늦게서야 방을 보게 되었고 나는 서슴지 않고 계약을 했다. 이 집이 지금까지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아스토리아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이다. 그 동안 살기로 했던 두 집보다 렌트비가 더 쌌던 것이다!

이사 다음날부터 맨해튼에 있는 지도교수의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씩 우리집 옥상에 올라가 거대한 빌딩 숲이 보이는 맨해튼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작업한 이미지가 바로 'Astoria'이다. 이편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편을 바라본다. 그러나 사람마다 느끼는 감회는 모두 다르다.

스캐너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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