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즈벨트아일랜드에 사는 시인 김종란(52)씨가 최근 한국에서 발행되는 '시문학(詩文學)'지(7.8월호) 신인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김씨는 "이제 더 실험적인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는 서울여자대학교 국문과 출신이다. 대학시절 교수는 창작보다 언어에 더 비중을 두고 수업했다. 이때 김씨는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마종기.황동규.김영태의 시를 읽으며 청춘을 보냈다. 극도로 내성적인 그는 데모와 최루탄 가스로 얼룩진 캠퍼스에서 졸업 후엔 집에서도 책에 파묻혀 보냈다.
1982년 김씨는 막연히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 구속 없는 삶을 그리며 언니의 초청으로 이민왔다. 이듬해 김용주씨와 결혼 브루클린과 브롱스에서 잡화상 등 사업을 하며 고달픈 이민자 생활을 꾸려나갔다.
사업이 잇달아 실패하자 김씨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우체국에 취직했다. 브루클린 레드후크를 거쳐 지금은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 윌리엄스버그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인종의 고객들을 만나죠. 영어를 몰라 모국어로 이야기하는 외국 출신 노인들과 바디랭귀지로 의사소통하면서 오히려 고향 같은 느낌을 받게됩니다."
김씨가 시에 다시 눈 뜨게 된 것은 플러싱에 있는 든든한교회의 김상근 목사의 격려 덕분이다. 두 아이를 낳은 후 신앙심이 깊어졌고 교회에 다니던 중 김씨를 눈여겨보던 김 목사가 '문학소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김 목사는 한 문학행사를 기획하며 김씨에게 신앙시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꼼꼼하고 신중한 김씨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본사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김정기 시인의 문학교실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 동안 책과 현실 문학과 삶의 괴리에 고민을 많이 했었지요. 시를 쓰면서 사람 되는 시간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김씨는 자신을 '투잡족'으로 부른다. 낮에는 우체국직원 밤이면 시인. 우체국에서 온 종일 일하고 집에 돌아가 남편과 저녁 식사 후 김씨는 자신과의 대화 속에 빠진다. 오후 10시가 넘으면 피곤도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
김씨는 지난해 뉴욕 한국일보 문예공모전 시 부문에 당선 2년 새 뉴욕과 한국에서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서둘러 첫 시집을 내려하지는 않는다.
"두세 편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써질 때까지 뜸을 들여야지요." 패스트푸드 시대에 김씨는 '느림보 시인'으로 더욱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