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의 제왕' 이문세 독창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문세는 오는 22일과 24일 뉴저지퍼포밍아트센터(NJPAC) 프루덴셜홀에서 한인 최초로 리사이틀을 연다. 이문세 독창회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 그의 자존심을 건 '명품' 공연이기도 하다.
'사랑이 지나가면'에서 '난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그녀의 웃음소리뿐'까지 이문세 노래는 미주 한인들에게 추억의 앨범이다. 우리 젊은 날의 초상과 잃어버린 꿈을 노래에 실어줄 가수 이문세를 만났다.
-해외 공연 때는 마음 자세가 다른가.
"부담스럽다. 국내 공연 때는 지방에서도 서울까지 올라오고 팬들이 움직인다. LA나 뉴욕 등 해외 공연에서는 한인들 삶의 터전 때문에 움직이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공연 오지 않으면 문화는 단절된다. 해외 공연은 이민온 한인 여러분에게 세월을 다시 주는 것이다. 세월을 반추해보면서 '그 당시 이런 삶을 꿈꾸었지'하는 등 감회를 주는 것이다. 이문세는 그 때 삶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한다."
-왜 '명품' 콘서트로 불리우나.
"이전에 미국에서 공연한 가수들은 여건이 한국처럼 좋지않아 완벽하지 않은 조건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이미 한달 반 전에 세트를 배로 부쳤다. 40여명의 출연진에 조명과 음향 등 기술진이 120여명이다. 이는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 대동하는 규모와 비슷하다고 한다. 최고로 완벽한 공연을 보여드릴 예정이다. 최상의 조건이기 때문에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하고 한다. 내가 가수로서 완성도 높은 공연의 물꼬를 트면 후배 가수들의 수준도 따라서 올라갈 것이다."
-80년대 후반 가요로 팝 시장을 누른 장본인이다. 그 비결은.
"나도 팝 세대였다. 그 때 가요를 시시하게 생각했던 팝 매니아들이 돌아왔다. 우리는 당시 유행했던 주류 음악에서 다른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영훈씨의 노랫말이 회화적이었다. 노래를 들으면 그림이 그려졌다. 멜로디 자체도 외국 것을 따라가지 않으면서도 클래시컬했다. 10년이 지나도 식상하지 않는 노래 즉 클래식이 됐다. 이를 시발로 후배들도 시적인 노래를 쓰게 됐다."
-지금 이문세씨 노래 리메이크 붐이 부는 이유는.
"지금 활동하는 가수들이 어렸을 때 내 노래를 듣고 자랐다. 이들이 신곡 발표할 때 선배 가수 노래 중에서 한두곡 불러보고 싶은데 세월이 지나도 노티나지 않으며 편곡하면 새 노래가 되는 것이 내 노래인 것 같다."
-이문세씨 노래는 노래방에서 인기없는데.
"내 노래는 듣기는 편해도 직접 부르기는 어렵다. 따라 부르기 부적합한 노래다. 감상 음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행가의 ABC는 대략 짐작이 가는 테마가 이어지지만 내 노래는 독특한 코드로 진행된다. 그래서 '노래방에서 부르다가는 망신 당하는 노래가 이문세 노래'라고도 한다. 나도 노래방에서는 내 노래가 영 안된다."
-그럼 노래방에서 무슨 노래를 즐기나.
"김건모의 '첫사랑' 조규만의 '다 줄꺼야' 팝송으로는 스티비 원더의 'Isn't She Lovely'와 ''Part Time Love'다"
-뉴욕에 자주 오나.
"1988년 경 아내가 뉴욕대학교(NYU)에서 무용이론을 공부할 때 처음 온 후 네다섯번 쯤 왔다. 뉴욕에 오면 항상 브루클린의 스테이크집 피터루거에 간다. 플러싱은 한국의 어떤 특정한 지역인 것 같다. 노래방에 찜질방까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미국 여행 중 기억에 남는 곳.
"2002년 월드컵 때 방송 그만 두고 건축하는 친구와 자동차를 빌려서 뉴욕에서 LA까지 한달간 미 대륙횡단 투어를 했다. 이 때 기억에 남는 곳이 산타페와 콜로라도 아스펜이다. 나는 스키광이다. 산타페 사막 한가운데의 산꼭대기에 스키장이 있었다. 깜짝 놀라 스키를 탔다. 그런데 산타페에서 현대 자동차 산타페를 보고 너무 감동했다. 애국심이 밀려온 것이다. 또 하나는 아스펜이다. 아스펜에 도착했을 때가 마침 스키장 개장일이었는데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왔다. 우리는 스키옷과 모든 장비를 사고 스키만 렌트해 낮에는 스키를 줄기 차게 탔고 밤에는 자연 온천을 즐겼다. 정말 잊을 수 없다."
-아들 종원이 유학왔다던데.
"우리 아들이 열여섯살이다. 이번 학기에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의 기숙사 학교에서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원래 동부에서 유학시키고 싶었지만 시골에서 천박하게 엄격한 틀 안에서 공부시키고 싶었다. 부모가 들락달락하면 독립심을 못기를 것 같아서… 우리 부부는 허전한 것도 잠시고 똘똘 뭉치게 됐다. 아내까지 떠나면 안되니깐 내가 잘 보이려고 알랑방구까지 끼게 된다."
-해외 콘서트에서 잊을 수 없는 관객은.
"일본 관객이다. 5년 전 동경 콘서트에서 '오늘 생일 맞으신 분 있냐?'고 물었더니 몇 사람이 손을 들었다. 나는 제일 연장자인 70세 할머니를 뽑아 무대로 불러 인터뷰하고 기타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그리고 그 기타를 선물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1년 후 할머니가 한국 공연에 가족들 모두 데리고 와서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기모노를 입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그 날 콘서트에서 기타 선물을 받은 후 쇼크로 세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다고 한다. 퇴원 후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이문세가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며 내 콘서트만 볼 것이라고 했다. 일본 공연에 세차례 한국 공연에도 두번이나 오셨다."
-이민사회에 대한 생각은.
"미국의 한인들은 더 경직되고 보수적인 것 같다. 기왕 콘서트에 가려면 최고 좌석을 고집한다. 예약도 안한 후 싼 자리 밖에 없으면 자존심 때문에 차라리 안간다는 것이 전형적인 한국 사람의 패턴이다. 아직도 남들을 의식하신다. 과시형이라고나 할까. 한국은 이제 100% 예약문화다 현장 구매가 별로 없다. 관객은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