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카고에서 100마일 정도 떨어진 딕슨 교도소에 앤드류 서 면회 신청을 하고 난 후 오케이 신호가 날아들었다.
앤드류 서와도 편지를 통해 자기가 방문자 성명을 확인했으며 내가 방문자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면회 오기를 몹시 기다리는 듯 했다.
5월 23일 아침 마침내 중알일보를 출발했다.
290번을 타고 88번을 타고 로칼 26번을 타고 2시간 이상을 달려 시골 동네로 접어들면서 "딕슨( DIXON)"이란 동네 싸인판을 볼 수 있었다. 설레는 가슴을 안고 "딕슨 교도소(Dixon Correctional Center)" 입구에 도착했다. 교도소 관망대가 높이 솟아 있었고 나지막한 감옥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파팅을 하고 면회 장소를 찾아 들어갔다, 손에 든 핸드폰을 다시 차에다 놓고 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다시 면회장으로 들어와 면회 신청서를 작성하고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나서 컴퓨터 입력이 끝난 후에야 락커 룸 키가 쥐어졌다.
지갑과 시계 그리고 자동차 열쇠 등을 보관함에 넣고 나서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면회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몇몇 수감자들이 가족과 애인인 듯한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고 있었다.
면회장 문을 열고 지정해 주는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런데 잠시 후 시큐리티 경비원이 허겁지겁 따라 들어왔다.몸 수색 없이 들어왔다고 다시 나가라는 것. 면회장 바깥에서 온 몸 수색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면회실로 입장 할 수 있었다.
지정된 좌석에 앉아 주위를 살피니 가족들과 카드 놀이를 하는 친구도 있고 아들을 만나러 온 어머니인 듯한 사람 그리고 애인, 혹은 부인이 남자 친구, 남편을 찾아온 듯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잠시 후 옅은 푸른 색 수의를 입은 건장한 젊은이가 들어왔다.
얼른 보기에도 머리를 빡빡 밀은 그가 앤드류 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 다큐멘터리 찍던 때와 거의 동일한(나이가 좀 더 들었음) 모습의 앤드류는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며 포옹을 해왔다.
대단히 살갑게 마주했다.아주 반듯해 보이는 젊은이라는 느낌이 왔다. 간단한 소개를 끝내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보내 준 인터뷰 질문서에 따라 인터뷰가 시작됐다.
지금 교도소 내에서 무얼하며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교도소 내 호스피스 병동에서 6개월 트레이닝 코스를 밟고 있으며 수료증을 받으면 정식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한 달 봉급은 28달러 80센트란다. 무엇보다 일하는 기쁨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감자들이 나이가 들어 휠체어를 타는 경우 이를 밀어주는 역할이다.이제 병원에서 정식으로 일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교도소 안에서의 꿈이란다.
그럼 더 큰 희망이 무어냐고 물었다. 100년 형을 언도 받을 때로 타임머신을 돌렸다. 그 때 그는 재판정에서 판결을 받고 평생을 가만히 후회하며 지내야하는지 아니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힘을 내면서 살 길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도 용기를 잃지않고 꾸준히 기도하며 나름대로 성실히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어느 덧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지금으로 봐서는 18년 후인 자기 나이 60세가 되어야 출소하는데, 감형이나 사면이 가능하다면 감옥에 들어오는 청소년들이 다시는 감옥으로 되돌아오는 일을 적극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며 경험 많은 수감자 멘토로서 그들을 훈육해 바깥 세상에 나갈 기회가 왔을 때 결코 이곳에 또 돌아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리는 신성한 사명이 자기의 비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들의 형님으로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겠다고... 그러면서 앤드류에게도 형이 있었다면 과거의 뼈아픈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나 그는 본인이 살인을 저지른 죄수라는 것은 분명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언론 기자로서 내가 썼던 "잘못된 선택"이란 칼럼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살해한 오두베인 가족에게 무슨 메세지를 전할거냐고 물었다.
그는 약 5년전 변호사를 통해 가족에게 편지를 한번 보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그 미안한 마음이 혹시나 그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살인자가 왜 자꾸 편지를 보내는지 싫어할까봐 감히 두번째 편지는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국 문화도 알지만 미국 문화도 알기에 사죄의 마음을 감히 피해자에게 편지로 표시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고 한다. 살인자의 편지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지금도 엎드려 가족들에게 백 번이라도 잘못을 빌고 용서 받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당시 아버지가 자기에게 부탁한 "엄마를 잘 부탁한다"는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세탁소에서 37번이나 칼에 찔려 돌아가신 어머니는 자기가 지켜 드려야 했었다고 후회했다. 나중에 누나인 캐서린이 그 범인이 바로 오두베인이라고 했을 때 자기는 증오에 치를 떨었고 그를 살해했지만 그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캐서린과 오두베인이 서로 짜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나중에 커서야 이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오두베인이 엄마에게 그런 증오를 품을 상황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캐서린은 어떻게 지내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지금 드와잇 감옥에서 정신이상자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 경찰이나 지인들을 통해 듣기로는 경찰과 자주 다투기도 하고 체중 관리도 안되어 몸과 정신 상태 등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라고 들었단다.자신을 사주한 죄는 밉지만 누나를 사랑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으로서 캐서린을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love her but not like her)는 말로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일고있는 청원 운동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감형이나 사면을 위해 일선에서 뛰고 있는 한인들에 대해 보내고 싶은 메세지가 있는냐고.
우선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고 이렇게 찾아와 주는 한인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을 전할지 모르겠다며 감사하는 마음에 자기가 여기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만 준다면 힘껏 노력하겠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처럼 한국인의 피를 가진 모범수로서 빚을 졌으니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는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기에 교도소 안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만약 추후에 좋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바깥 세상에 나가 꼭 빚을 갚는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이상 실수를 안하겠다고.
그리고 인터뷰 동안 앤드류와 함께 햄버거를 먹으며 스프라잇을 마셨다, 점심을 굶고 기다렸다고 했다.음식은 모두 면회실 옆 자판기에서 뽑은 것들이었다.
자판기에서 햄버거가 제일 좋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김치찌개"라고 말했다. 잠깐이나마, 아- 챙겨올 걸 그랬나하는 착각이 들었다.
면회실 화장실에서도 몸 수색은 있었다.
앤드류는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의 두번째 만남을 맺었다.
"교도소 안에서는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처신을 잘 해서 그런 다툼에 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남에게 주눅이 들어 행동하진 않아요. 저의 권리는 찾아가는 수감 생활을 할 것입니다.그리고 모범수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자님, 아니 형님으로 해도 되나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