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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네바다에서 자이언 캐년 거쳐 유타로

Los Angeles

2006.09.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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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라스베이거스 황야는 신유목민의 땅
본지 창간 32돌을 맞아 오늘부터 매주 금요일 위크& 섹션에 미대륙의 관광지와 풍물을 소개하면서 미국을 새롭게 조명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시리즈는 현재 미대륙을 장기 취재 여행 중인 김창엽 객원기자가 담당합니다. 첫회는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세인트 조지를 지나 9번 동쪽 방향을 타고 자이언 캐년까지의 여정입니다.
-편집자 주

 자이언 캐년을 이루는 처녀강(Virgin River)의 발원지 부근. 버진리버는 높은 곳에서 발원하지 않고 암반층 사이로 물이 빠져나와 강을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자이언 캐년을 이루는 처녀강(Virgin River)의 발원지 부근. 버진리버는 높은 곳에서 발원하지 않고 암반층 사이로 물이 빠져나와 강을 이루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여행을 떠나며…

누구나 떠나길 소망한다. 떠남의 대상과 정도는 차이가 있을 망정. 설령 떠나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다해도 그 역시 결국 언젠가 떠난다.
집을 떠나 어디론가 한참을 떠돌고 싶었다. 그것은 돌이켜보면 태생적인 열병같은 것이었다. 집시의 피가 흐른다 해도 좋고, 역마살이 끼었다 해도 좋다. 퇴화하지 않은 유목민적 기질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돌고픈 갈구는 첫사랑 마냥 한번에 와라락 앓고 끝나는 고열의 열병 같은 것이 아니었다. 미지근하게 그러나 참으로 오래가는 그런 병이었다.
초등학교 5~6학년때쯤이던가. 이 항구에서 저 항구로 떠도는 마도로스가 그렇게 되고 싶었다.
당시 꿈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린나이에 발칙하게도 생각이 너무 나간 것이었다.

적어도 세계 50개 정도의 항구 도시에 가정을 두고 싶었으니까. 늙으막에도 세상 이 곳 저 곳을 돌아보려면 여기저기에 자식들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마도~로~스 수첩에~는 이별도~ 많다… ” 로 시작되는 트로트 유행가를 불러 제끼면서 혼자 상상에 젖어들곤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떠돌고픈 ‘몽상’은 현실의 제약을 받았다. 그래도 꾸준히 기회를 봤다. 헬리콥터 조종 기술을 익힌 뒤 호주에 진출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그도 안되자,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화물 트럭 운전사로 방향을 꿈의 방향을 틀기도 했었다.

이런 식으로 머릿 그림만을 그리며 현실이 나를 풀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근년들어 떠나고자 하는 욕구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결행하지 않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린 것.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나이가 점점 50줄에 다가가면서 초조했을 수도 있다. 대입 전쟁을 치르고 있는 큰 아이에게 특히 미안했지만, 하여튼 내가 더 급했다.

이주 노동자들 '희망의 회랑'15번 도로

아메리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좀 살아본 경험도 있겠다 노상 강도 만나 사망할 가능성도 작은 나라이겠다. 또 한편으로는 물정 어둔 아프리카나 중앙 아시아 등에 도전해볼 만한 용기도 없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자연은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끼고 돈다고 할만큼 보호를 받고 있다. 때문에 야성은 빛을 잃고 온실 속의 화초같은 느낌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아메리카의 자연은 충분히 다채롭고 다양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이것이 아메리카 자연기행을 하는 이유다.

그러나 말이 아메리카 자연기행이지 식물학자도 지질학자도 아닌 바에야 학술 기행은 당초부터 어불성설이다. 아메리카 자연과 그 곳에 살았던 사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뒤범벅 된 체험 및 견문 여행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LA에서 남부 유타로 떠돌이 여행의 첫 걸음을 뗀 것은 우연치고는 자못 의미 심장하다. 이 지역은 미국의 대표적인 황야로 옛날 같으면 유목민 차지가 될 땅이기 대문이다. 유목민적 기질이 있다면 테스트해 보라는 의미일까.

굽이굽이 자연이 주는 '메시지'

실제로 세계의 유목민들은 모두 황야가 생활 기반이다. 황야는 세계 땅 면적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유목민들의 본거지인 몽골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가 이런 지역이다. 황야라고 하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있다.

변변한 눈요기 거리 하나 없는데다 겨울 한철을 빼고는 연중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덥고 모래 먼지 바람은 거세게 불어대는데 좋아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황야가 유목민들의 몫이듯 땅도 나름대로 운명의 주인이 있다. LA에서 라스베이거스에 이르는 황야는 시대가 바뀌어 옷만 갈아 입었을 뿐 여전히 신유목민들의 땅이다.

땅을 녹일 것 같은 석쇠 같은 대지를 전천후 차량( ATV)을 타고 누비는 이들은 누구인가. 도시에 틀을 갇혀 답답함을 달래지 못하는 유목민 기질의 젊은이들이 말대신 타는 것이 ATV 아닌가. LA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15번 주간 고속도로 주변에는 하루가 다르게 ATV 사이트가 늘고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1마일이 멀다하고 늘어서 있을 정도다.

라틴계를 중심으로 한 이주 노동자(Migration Worker)들은 어떤가. 이들에게 LA와 라스베이거스를 잇는 15번 도로는 초원 길 역할을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풀 대신 파란 색의 달러 지폐를 좇아 이 길을 통과하고 있다. 북으로 유타의 솔트 레이크 동북쪽으로 콜로라도의 덴버로 향하는 이들에게 15번 길은 '희망의 회랑'이다.

라스베이거스 인근 작은마을 진

이들에게 라스베이거스는 희망의 회랑 한 중심에 선 오아이스 같은 도시. 그러나 사방이 높다란 산으로 빙 둘러쳐진 이 분지 도시는 그러나 쾌락 드라이브에 하루가 다르게 녹아나고 있다.

하늘을 가득메운 노오란 빛깔의 대기는 별명이 죄악의 도시의 신시티(Sin City)의 불행한 결말을 연상짓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LA형 스모그로 불리는 광화학 스모그가 날로 심해지면서 하늘은 하루가 다르게 누리끼리 해지고 있다.

자연과 조화없는 탐닉의 뒤끝은 으레 씁쓸하다.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작은 마을 진(Jean)은 그런점에서 시사적이다.

라스베이거스 바로 옆의 이 마을에는 2개의 대형 카지노가 있는데 카지노 바로 뒤편으로 네바다 주 교도소가 자리잡고 있다. 교도소 뒷편에는 죄수들의 탈출 의도를 일거에 꺾어버릴 만한 험상궂은 산 한 채가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서유기의 화염산을 연상케하는 산과 교도소 카지노의 묘한 3각 구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황홀한 새벽 연봉의 ‘붉은 장관'
자이언 국립공원과 캐년


황야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이라면 자이언 캐년을 한번쯤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이 곳은 황야의 속살이 때로는 설악산이나 요세미티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자이언 (Zion) 국립공원 일대는 나무로 ‘화장발’ 을 세우지 않고서도 산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자이언 국립공원내에서도 남쪽 자락 경계를 이루는 자이언 캐년 일대가 압권이다. 캐년중에서도 웨스트 템플(West Temple)과 성스러운 제단 등 8000피트 안팎의 연봉이 갖은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동트기전 새벽녘 연봉들의 모습은 특히 가관이다. 어둠이 육괴들의 발밑, 저 아래 계곡으로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면서 연봉들은 머리부터 거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1300 만년 전 이들이 얕은 바다에서 솟아오를 때와 같은 모습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랜드 캐년의 고장, 애리조나에서 왔다는 존과 마시 부부는 병풍처럼 우뚝서 늘어있는 이들 육괴들이 햇빛을 받아 붉게 변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스펙태큘러”라고 연발했다.
이같은 모습에 경외감이 들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수천년전 이 곳에서 반 유목민 생활을 했던 아나사지(Anasazi) 인디언들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나사지 인디언들은 그 옛날, 춘추분과 하지, 동지를 정확하게 계산해냈을 정도로 천문에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태양의 위치 변화와 맞물려 시시각각으로 더욱더 신령스런 모습을 띄웠을 법한 이 거대한 돌기둥들에 대해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트기전 계곡 웅장함에 경외감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자연도 음양의 조화가 없으면 어딘지 허해 보인다. 거대 한 육괴들이 양이라면 육괴들의 뿌리를 촉촉히 적시며 흘러간 버진 리버(Virgin River)‘는 음이다.
처녀 강으로 번역되는 이 강은 길이로만 따진다면 백수십마일에 불과한 천급이다. 그러나 이 강은 높은 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하류로 흐르는 여느 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자이언 캐년의 육괴들은 미세한 구멍을 가진 사암인데, 이 사암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서 육괴 정상에 내린 빗물 등이 구멍을 타고 내려와 계곡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또 누가 붙였는지, 처녀 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십 평방 미터에 이르는 계곡 유역을 적시고도 남을 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또 지금도 힘이 넘쳐 계곡 침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하상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거대한 돌기둥 따라 천문학 계산
인디언 이어 몰몬교도가 주인으로


누군들 이같은 곳을 탐내지 않았을까. 유물 발굴 자료에 따르면 인류가 이 곳에 터를 잡기 시작한 시기는 최고 8000 년전으로 거슬러 간다. 그 이후로 수 많은 인디언 종족들이 앞다퉈 가며 이 자리의 주인을 자처했다.

인디언의 뒤를 이은 것은 몰몬교도들. 자신들만의 이상향을 꿈꿔온 이들은 19세기 인디언들과 치열한 땅뺏기 전쟁을 치르면 삶의 터전을 확보한다. 캐년 남쪽 입구에 자리잡은 락빌(Rockville)이라는 아름다운 작은 마을은 몰몬교들에게는 성취의 증거물이다.

이 마을은 유타가 미국 주정부로 편입(1896년)되기 훨씬 전인 1860년 세워졌는데 마을 입구의 경계석은 물론 한가운데의 시계탑에도 자랑스럽게 설립 연대를 표기해놨다.

몰몬교도들이 자이언 캐년을 비롯 적어도 주 면적의 절반 가량이 황야인 유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그들의 끈질긴 개척정신에 기인한다. 개척정신과 강인한 결속력은 척박한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는데 상당히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이언이란 이름은 몰몬교도들이 붙인 성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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