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1.5세 희곡작가 이영진씨가 연출을 겸한 연극 '용비어천가(Songs of the Dragons Flying to Heaven)'는 잔혹 실험극이다.
그 잔혹성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과장하며 조롱하는 내용에서 비롯되며 실험성은 한인과 백인의 삶을 병치하면서 드라마.영화.무용.슬랩스틱.스탠드업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퓨전' 형식에서 온다.
지난 21일 맨해튼 다운타운의 소극장 히어아트센터에 개막된 '용비어천가'는 막 오르기 전부터 관객과 실험을 시작한다. 관객들은 극장 안에 들어가기 전 용과 산수화가 그려진 창호지문과 연등으로 장식된 대기 공간에서 불교음악을 들으며 기다리는 '제례'를 통과한다.
얼마 후 자갈이 깔린 길을 따라 극장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마감공사가 끝나지 않은 아파트처럼 합판에 황량한 무대(방)와 마주하게 된다.
이영진씨는 관객의 기대감과 편견을 의도적으로 깬다. 그는 장식적인 무대 밖에서 관객을 유혹 황량하고 병들은 인간의 내면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다인종의 미국에 사는 우리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
첫 장면은 암전 속에서 이영진씨가 뺨맞는 비디오를 준비하는 목소리로 시작된다. 잠시 후 우리는 무대 정면에 투영되는 연출자(작가) 이씨가 눈물 흘리며 수없이 뺨 맞는 폭력 장면을 지켜보게 된다.
이어 코리안아메리칸 여성(베키 야마모토)가 나와 관객을 향해 독백한다. 그는 "아시안 부모 밑에서 자란 아시안아메리칸 대부분이 약간씩 뇌가 손상됐다. 이는 마치 영어를 할 수 없는 원숭이들에 의해 길러진 것"이라고 조롱한다.
이 연극의 나레이터이자 관찰자이며 작가 이씨의 대변인이기도 한 야마모토는 극 중에서 소수계로서 인종차별의 분노와 작가로서의 고뇌를 역설한다.
현란한 한복 차림의 한인 여성 1(전 스카이 김 분) 한인 2(김혜리 분) 한인 3(제니퍼 림 분)은 광란의 한국 전통무를 추다가 "매춘이 즐겁다"고 말한 후 '창녀와 손님' 놀이를 한다. 인천에서 자란 한인 3은 "교사에 의해 강간당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기독교인은 악마이자 동성애 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 한인 기독교인들은 더 사악하며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국가다. 한인들은 보수적이며 세금을 기피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에 무관심한데다가 탐욕스럽고 반 동성애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냄새가 나며 웃기게 말하고 한인 거리는 김치 냄새가 난다"라고 조롱한다. 그리고 한인 여성들은 분신 수면제 과다 동맥 절단 음부 난자 등 10여가지 자살의 행위를 차례로 흉내낸다.
놀랍게도 한인 1과 2는 한국어를 한인 3은 중국어를 구사한다. 이들은 야단법석의 상황에서 떠들고 춤추고 울고 웃고 치유하고 소통한다.
한인들의 장면이 시끄러운 코미디라면 백인들의 장면은 건조한 비극이다. 차가운 형광 조명 아래 앉은 백인 남(브라이언 비커스태프 분)과 여(줄리아나 프란시스 분)는 시들어가는 사랑 알코올 중독 얼굴 의료보험 그리고 정치적 이슈에 대해 차갑게 언쟁한 후 "백인이라는 게 훌륭해!"라고 스스로 감탄한다.
이들은 "아프리카로 가고 싶어. 바나나 나무 위에서 원숭이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지"라며 아시안이 경멸한 원숭이를 부러워한다.
이영진씨는 한인 여성들과 백인 남녀의 상황을 병치하고 극단화하면서 인종과 정체성 그리고 행복이라는 문제를 관객에게 던지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연극 '용비어천가'는 한인들이 보기에는 '몹시 불편한' 작품이다. '코리안-아메리칸' 작가(연출자)가 두 나라의 경계선에서 바라본 정체성이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연극의 목표 관객은 물론 주류사회/백인일 것이다.
그들에겐 낯설고도 과장된 한국에 대한 묘사가 코미디로 보일 수 있다. 코미디언 우디 앨런은 "비극+시간=희극"이라고 말했지만 이 연극은 '비극+거리=희극'임을 입증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한인 관객에게 이 연극은 처절한 거울 보기이며 비극에 더 가깝다. 또한 한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뒤틀린 묘사가 악성 스테레오타입을 고착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종대왕이 건국의 시조들을 찬양하며 노래한 서사시가 '용비어천가'다. 연극 '용비어천가'는 너무도 경박하게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패러디하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