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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칼럼 '동서 교차로'] 내 인생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Los Angeles

2006.10.0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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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는 세 번해서 승부를 가린다. 인생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그 한 번 뿐인 인생을 위해 수없는 반복을 거듭한다.

세상 만사 저절로 쉽게 되는 건 없다. '누워 떡먹기다'며 겁없이 사는 사람도 있지만 떡도 바로 앉아 꼭꼭 씹어 먹어야 체하지 않는다. 잠도 열심히 자야 꿈도 꾸고 낮에 꾸는 '꿈'은 두 발로 부지런히 뛰어야 건질게 있다.

성공은 실패의 '연장전'이고 그 '완성품'이다. 꿈을 향해 수없이 날린 화살 들 중에 과녁에 가장 가깝게 맞은 것들을 이름하여 '성공'이라 부른다. 인생살이는 복습할 수도 없고 리플레이(Replay)도 불가능하지만 재활용은 가능하다. 어제의 실수가 모여 '약'이 된 것이 '경험'이고 경험의 나이테가 '연륜'이다.

이미 날아간 화살을 되돌릴 순 없지만 땅에 떨어진 '화살'을 모아 '재생'시키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르네상스(Renaissance)'란 불어로 '부활'이란 말이다. 원래는 '재생'(再生.rebirth)이란 뜻으로 고전 텍스트의 재발견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삼아 부흥시킴으로 새 문화를 창조하려는 사상 문학 미술 건축에 이르는 다방면에 걸친 정신운동이 '문예부흥'이다.

1550년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역사가인 조르조 바사리가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에서 '미술의 재생'이라고 언급함으로서 르네상스 개념은 주목을 받게됐다. 미술사를 빛낸 미켈란젤로 다빈치 라파엘로에 의해 절정을 이루며 화려한 꽃을 피운게 된다.

르네상스는 예술세계에만 국한되지않고 중세의 억압에서 인간본성에 관한 재인식과 재수용을 촉구하는 정신운동으로 인류 문명사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중세를 인간성이 말살된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운동이 인간본성에 접근하며 억압된 정신세계에 부흥의 불길을 이르킨 것처럼 삶에도 차가운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문예부흥'이 필요하다.

미중서부에서 활동하고있는 한인 미술협회 화가 17인의 전시회가 열렸다. 고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이민 결혼 출산 직업등의 공백기를 용케도 견디며 미술이 '죽어도 좋아'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밥도 술도 돈도 되지 못하지만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의 소박한 축제였다.

인생에서 '르네상스'란 말은 '절정기' '융성기'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인간은 크게 분류해 세번의 암흑기를 거쳐 르네상스를 맞는다. 암흑기를 잘 견뎌내며 내실을 기한 사람은 부활의 환희를 맛볼 수 있다.

인생의 첫번째 르네상스는 부모의 손길을 벗어나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청소년 시절의 홀로서기다. 두번째는 배우자나 직업과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청장년시절의 투쟁사다. 마지막은 죽어가는 육신에 던지는 영혼의 도전장이다.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인생의 마지막 촛불을 찬연하게 태워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인생의 암흑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깃발을 꽂을 고지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색깔의 깃발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인생의 예술가다. 지나간 열차를 되돌릴 순 없지만 철로가에 핀 코스모스를 꺾으며 '부활'을 꿈꾸는 사람의 내일은 뜨거운 바람이 분다.

인생의 반란은 아름답다. 건강한 반란 신선한 일탈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지리멸렬한 생을 산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삶은 역동적이다. 나홀로 가는 길이라도 좋다.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 다해도 꿈으로 연결된 것이라면 두려울게 없다. 르네상스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일어난다. 부서진 꿈 흩어지는 낙엽을 주우며 재생의 의미를 깨닫고 '르네상스'를 꿈꾸는 사람은 인생의 대가요 창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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