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에는 5개의 박물관이 있다. 현대 미술관, 도시 역사 박물관, 자연과 사람 박물관, 콜롬비 고고학 박물관, 그리고 아우구스티너 박물관이다. 5개 박물관 입장료는 7유로(8달러). 현대 미술관, 도시 역사 박물관을 거쳐 자연과 사람 박물관을 찾았다. 이 박물관은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 전시관과 어른들은 위한 사람 전시관이 있다.
마침 사람 전시관에서는 인비지블이란 타이틀로 앤 크리스틴 부헤의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부헤는 1975년 생으로 뮌헨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그녀는 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주제로 인도, 아프리카 등을 다니며 사진촬영을 한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살고 있는 크리스틴과 모세의 모습이 보인다. 크리스틴은 16살 때 모세의 전 여자친구로 부터 온몸에 화상을 입는 끔찍한 공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한 때 절망했지만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모세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사랑의 증표로 예쁜 두 딸까지 태어났다. 현재 크리스틴은 공공장소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모세와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못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나의 가슴을 친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인도에 사는 22세의 ‘마키마’라는 처녀다. 몇 년 전 이웃집에서 그녀에게 청혼이 들어 왔다. 그녀가 거부하자 아들의 어머니가 자고 있는 그녀 얼굴에 황산을 쏟아 부었다. 그런데도 아들 어머니는 감옥에 들어 가지 않았다. 마키마의 집에서 보상을 받고 고발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꿈은 세상의 정의를 위해 경찰이 되는 것이다.
두 장의 사진 이외에도 전시장에는 가슴 뭉클한 사진이 수 십장 더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우구스티너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우구스티너 박물관은 예전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외부의 조각상과 가고일의 원본이 보관돼 있다.
가고일은 저승세계에 살며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로 알려져 있다. 가고일을 건축물에 장식하는 것은 외부의 악귀로 부터 신성한 곳을 지키려는 풍습에서 시작된 것이다. 박물관을 들어 가지 않았다면 복제품을 보고 감탄하는 엄청난 실수를 할 뻔 했다.
박물관에는 대성당의 조각품 외에도 19-20세기 독일 화가들의 회화와 중세 시대에 그려진 회화들로 가득하다. 1893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세계박람회가 개최됐다. 박람회에는 대한제국(영문 표기: Corea)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46개국의 나라가 참가했다. 당시 박람회에는 여성 예술가 전용 전시관이 문을 열어 여성시대가 오고 있음을 만방에 알리는 박람회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여성 예술가들은 남자 예술가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독일은 ‘아우구스테 셰프’를 비롯한 여성 화가 37명의 작품을 출품했다. 셰프는 프라이부르크와 뮌헨에서 공부한 후 베를린, 비엔나, 파리,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한 여류 화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알려진 나혜석(1896년 생)은 태어 나기도 전의 일이다. 19세기에 활약했던 여성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려니 감개무량함이 나의 온몸으로 스며든다.
중세 전시관에서는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의 중앙 제단화를 그린 한스 발둥 그리엔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시관에는 발둥이 그린 4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발둥은 대성당에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도 몇 점 제작했는데 그 중 전시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예수님의 시체를 안고 비탄에 젖어 있는 성모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발둥의 회화로는 죽은 예수님을 보며 슬퍼하는 성모와 천사들의 모습을 그린 1513년도 작품과 큐피트의 불화살을 그린 1530년 작품, 그리고 성모와 잠자는 아기 예수를 그린 1520년도 작품이 있다. 발둥은 뒤러의 제자로 종교화는 물론 태피스트리,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 화가였다.
전시관에서 발견한 또 한 명의 위대한 화가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다. 그의 작품은 ‘로마 산타마리아 마지오레의 발견’이 있는데 그뤼네발트는 콜마르(프랑스) 운더린덴 미술관에 있는 이젠하임 제단화를 제작한 위대한 화가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3겹의 접이식으로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한 고통을 그대로 화폭에 담은 엄청난 대작이다. 당시 맥각병에 걸린 사람들은 피투성이 예수님을 바라 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맥각병은 북부 유럽에서 유행하던 병으로 나병처럼 몸이 문드러지며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그뤼네발트는 독일인들에게는 뒤러와 함께 가장 존경받는 화가로 꼽힌다. 그를 존경하던 독일인 중에는 신고전주의 작곡가 파울 힌데미트가 있다. 힌데미트는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부탁으로 교향곡 하나를 작곡했다. 교향곡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야기를 그린 ‘화가 마티스(Mathis der Maler)’라는 작품이다. 화가 마티스는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의해 1934년 3월 12일 초연됐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같은 제목의 오페라까지 발표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작품은 드로잉 35개, 회화는 10 개 작품이 남아 있다. 그 중 한 작품(Crecifixion)이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