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시네토크] 영화 '비열한 거리'···삼류 인생의 '뒷골목 잔혹사'

Los Angeles

2006.10.26 10:51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감독 유하, 주연 조인성·남궁민·진구·천호진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 하나 바로 '건달은 없다'라는 것이다. 유하 감독 전작의 제목들을 빌어본다면 '의리는 미친 짓이다' '뒷골목 잔혹사' 등으로도 표현해 볼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영화는 '건달'이라는 그럴 듯한 말 뒤에 숨어있는 조폭 세계의 잔혹성과 그 안에 살아가는 삼류 인생의 비애감을 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삼류 조폭 조직의 2인자 병두(조인성)는 기껏해야 떼인 돈 받아주기나 하는 정도의 별 볼일 없는 인생이다. 조직에서는 온 몸에 휘 감긴 용문신을 자랑하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잘도 구사하지만 철거촌 집에서 가난하게 사는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 앞에선 삶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이다.

어떻게 해서든 조직에서 자리잡고 가족들과 안정된 생활을 꾸려보고자 노력하지만 그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그 때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회장(천호진)으로부터 은밀하게 제안이 들어온다. 어느 부장검사를 처치해 달라는 요구다.

병두는 충복 종수(진구)와 함께 그 요구를 들어주며 조금씩 조직 내에서 자리를 잡아간다. 마침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찾아온 영화 감독 지망생 동창 민호(남궁민) 덕에 오랜 기간 잊고 지내던 '우정'의 의미까지 되찾아가며 삶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지만 결국 병두 뒤에 남는 것은 그의 등을 치려고 시퍼런 서슬을 들이 대고 있는 다른 이들의 비열함 뿐이다.

'양아치'와의 차별화를 위해 그토록 자존심과 의리를 강조하는 '건달'들. 하지만 '비열한 거리'는 건달이건 양아치건 끊임없는 폭력과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웅변한다.

조폭이기 이전에 한 명의 '아름다운 청년'인 병두가 끊임없이 좌절하고 뒤통수를 맞아야만 하는 암흑 세계의 현실은 그래서 더욱 잔혹하고 슬프다. '느와르'라는 장르의 미덕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풍기는 이미지가 기여한 바도 크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에게 마초적 힘과 동시에 수줍음을 잡아 냈듯 이번에도 조인성에게 거친 야망의 분출과 불안하고도 여린 영혼의 흔들림을 동시에 끄집어 내 관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다만 중간중간 배치된 '어디서 보고 들은 듯한' 클리셰들이 '비열한 거리'의 독특한 매력을 심하게 깎아 내린다.

이별 장면에서 내려야만 하는 비 담배 한 대를 물 때 울려야만 하는 탱고풍의 아코디언 연주 누군가가 죽어줘야만 하는 결혼식장 등의 상투성은 어쩐지 너무 평범해 '유하 감독 답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경민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