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70년 초반 까지도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에서 제일의 긴다리로도 유명했던 구포다리(정식명칭은 낙동장교)가 수년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총길이 1060m에 다리의 양쪽 난간안으로 인도가 있는 2차선 넓이의 다리였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 9월30일 착공해 1933년 3월17일 준공된 후 지난 2008년 철거 결정되기까지 75세의, 지금으로는 많지도 않은 역사의 흔적도 안남기고 뜯어 없애버렸다고 한다. 지금의 위치로는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이나 옛 지명은 경남 동래군 구포읍이다. 다리건너 경남쪽은 현재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옛지명은 경남 김해군 대저면이다. 구포다리는 대저면을 가로 지르며 부산과 경남을 연결해주던 유일한 낙동강 하류의 아름다운 긴다리였다.
필자가 거주하던 1960년에도 한여름의 끝자락 9월이면 가끔 몰려오는 늦여름의 태풍으로 큰 홍수가 범람하면 낙동강의 상류지역 대구 안동 왜관 북쪽에서 떠내려오는 많은 나무와 소 돼지, 가끔은 초가지붕이며 집 전체가 거센 물결에 휩쓸려 밀려와 구포다리 교각에 걸려있다 모두 산산조각이 나면서 하구쪽 남해바다로 무서운 속도로 떠내려 가곤했다. 몇년마다 연례행사 모양 닥쳐오는 큰 수해가 나면 그시절에도 다리의 안전문제로 속도제한이나 가끔식 통행을 제한하면서 손상된 다리교각의 수중 보강공사을 시행했다. 교각과 기초보는 항상 시멘트 콩크리트로 확장되어 멀리서 보면 큰장화를 신고있는 모양이었다. 땜질식의 보강공사도 소용이 없었는지 드디어 2003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매미가 몰고온 강력한 홍수에 다리 상판의 일부 구간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갔다고한다.
매년 되풀이되는 많은 보강공사와 수리로 인하여 골머리를 썩히던 부산시는 2차 붕괴후 2008년 안전을 이유로 철거를 강행했다. 구교의 상하류 쪽에 새로운 구포대교와 낙동철교(전철전용)의 신교가 건설됐다. 많은 역사와 애환을 간직하고 있던 구포다리가 단지 흉물스럽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철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부산의 뜻있는 향토애호가들과 많은 시민들이 철거하지 말고 보수하여 인도교로 사용하면서 다리위에서 낚시도하고 도보로 걸으며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의 경치도 전망할수있는 산책교와 관광용 또는 역사의 유물로 보존하자는 민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가 이 다리를 건설한 것은 비옥한 김해평야와 내륙지방의 수많은 농산물과 잡화를 수탈하여 부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수송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더 큰 목적은 대륙진출의 교두보로 일단 낙동강 하구에 대교가 있어야 육로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육로로는 구포다리 건설과 국도. 철로는 경부선. 경의선이 일제의 최우선 대륙 침탈용 토목공사였다. 특히, 해방후 한국전쟁 때는 마지막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전선을 사수하기위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물량의 미국의 군수물자와 인력. 병력. 장갑차가 단 하나 밖에 없는 구포다리를 이용하여 운송됐다. 이들 물자는 당시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전투에 투입됐고, 구포다리는 마지막 전선을 승리로 이끌어준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때 전쟁통에 입은 깊은 상처와 손상으로 골병이 든 다리를 수리 보존할 생각은 하지않고, 이제는 새로운 현대식 대교의 중간에서 보기에 촌스럽고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사자성어로 말하자면 토사구팽 시킨 듯 해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전 필자는 플로리다의 팬사콜라에 여행간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모양의 새 다리와 오래된 구교를 같이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에 좋았던 적이 있다. 팬사콜라 시내에서 바닷가쪽으로 건너가는 곳에 새로 건설된 현대식 다리옆에 옛날 다리도 나란히 있었는데 신교는 차량전용으로, 구교는 인도교겸 시민들이 한가로히 거닐기도하고 낚싯대도 드리우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릅답고 평화스럽게 보였다. 옛것도 그런 모습으로 보존하는 지혜에 큰 감명을 받았다. 지난 쓰라린 역사와 가슴아픈 기록을 간직한 구포다리도 잘 보존해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증거로 보여 주기를 바랬는데 없어졌다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오래되고 낡아서 더욱 더 돋보이는 아름다움과 고풍스러움이 함께 원숙해보이는 것은 문화유산으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무조건 헌 것과 낡은 것은 헐어내고 밀어내 버리고, 현대적인 번듯한 모습과 멋진 좋은 것만 보여주겠다는 고국의 모습에서 이젠 옛고향의 따뜻하고 고풍스런 정취는 찻아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