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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펜실제이니아 '아미시' 마을

Los Angeles

2006.12.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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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명 싫다' 은둔의 삶, 오하이오주 등 미국내 20만여명, 300~400명 소집단 위주로 생활
10월초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시(Amish) 마을. 한두번도 아니고 십수차례나 '쫓고 쫓기는' 황당한 숨바꼭질을 해야했다.

게임의 술래는 나. 숨는 것은 아미시 사람들이다. 물론 서로 원해서 하는 술래잡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화가 난다. 이 짓이 벌써 서너 시간째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무단 침입을 감행하기로 했다. 해도 뉘엿 뉘엿 저물어 가는데 언제까지나 허탕만 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먹이' 가 나타나면 인정사정 안보고 '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낚인 이가 '리바이 킹(Levi King)'이다.

리바이도 처음에는 내가 다가가자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쌍둥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있었기에 '도망'은 쉽지 않았을 터 몇발짝 못떼고 나한테 잡혔다.

강도 높은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서 침입자의 위아래를 조심스럽게 훑는다. 드물게 아니 어쩌면 난생 처음 대면하는 동양인일 수도 있으니 그도 호기심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나 발길을 잡아둔 이상 침묵을 깰 책임은 내쪽에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가. 여기 사람들은 다 농사 짓고 가축 키우는 것 같던데 당신도 그러느냐"고 먼저 입을 열었다.

리바이는 가구를 만든다고 했다. 올해가 6년째로 이제 신참 티를 벗은 것 같았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리바이는 얼굴도 핼쓱할 정도로 희고 아주 왜소한 체구가 아무리 봐도 농사가 업이 되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이번에는 그가 묻는다. "당신은 누구며 어디서 왔는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을 안다고 그랬다. 그러면서 북한의 수해며 흉작 상황을 궁금해 한다. 아미시들이 세상에 관심을 안보이는 것 같아도 세상 돌아가는 주요 상황은 다 파악하고 있다는 애기다.

'바깥 세상' 소식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리바이는 신문을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들은 보통 사람(Ordinary people)"이라고 말한다. '바깥 세상'(Outside world)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음이 틀림없다.

아미시들은 미국 사회에서 왕따 아닌 왕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두해도 아니고 수백년 동안 그래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홈리스들 보다도 더 비정상적 사람들"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문명을 거부하는 집단 극단적인 신념의 종교 공동체 은둔의 삶…. 아미시들에 게 으레 따라붙는 꼬리표들이다. 아미시들로서는 하나같이 전혀 반가울리 없는 수식어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미시와 아미시 아닌 것들과는 경계가 있다. 그래서 내가 리바이를 만나기전 아미시 사람들과 숨바꼭질을 한 것이다.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아미시 아주머니는 내가 다가가자 집으로 도망치듯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선 가로로 난 창문의 블라인드 한줄을 쳐들고 방안에서 내 행동거지를 살폈다.

여긴 18세기…마차가 달린다

아미시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은 호기심이 발동해서였다. 물질만능의 시대 그 것도 미국의 한 복판에서 18~19세기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미시들이 내가 지향하는 삶에 어떤 힌트를 줄지도 모르는다는 기대도 있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실감하고 있지만 인공보다는 자연을 가까이 하는 도시보다는 시골 방식의 삶이 내게는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중 선후를 따진다면 호기심이 먼저다. 한데 방안으로 들어간 아미시 아주머니가 블라인드 틈을 통해 나한테 눈을 떼지 않는 것은 그녀 역시 호기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일 게다. 서로가 서로에게 일종의 신기한 실험동물로 비쳐지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도 아니라면 찰나 우리는 각자 자기방식대로 '인간 동물원'에 와 있었다.

반면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천진난만했다. 한번은 아이 너댓명이 마당에서 뛰노는 걸 보고 다가서니까 이 녀석들이 놀이를 멈추고 내게 관심을 보인다.

한데 이 순간 어디서 내 움직임을 추적했는지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큰 소리를 내며 집밖으로 비호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아이들을 집안으로 거둬 들인다.

자신들의 마을 깊숙이 침입한 낯선 동양인에 대한 면박이다.

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 혹은 바깥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려는 모성의 발동이다. 동시에 "우리 아이들은 관광객의 값싼 눈요기거리가 될 수 없다"는 항변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리바이를 만나기 전까지 연속해서 아미시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을 당한 셈인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만도 했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안좋았다.

미국내 아미시 마을을 대표하는 이 곳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카운티를 찾은 것은 큰 사건이 있은 직후였다. 약 일주일전, 이 동네 초등학교에서는 아미시 아닌 한 30대 백인 남성이 학교에서 아미시 초등학생 여러 명의 발을 묶어놓고 총으로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남의 눈에 띌세라 조용 조용히 살아왔던 아미시 사람들로서는 십수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의 크고 작은 뉴스 매체의 관심이 이 작은 마을에 온통 쏠렸다.
세상 이목이 쏠리는 것과 반비례해 이들은 움츠러 들었다. 바깥 세상에 대한 기피증이 이렇듯 최고조에 올랐을 때 아미시 마을을 찾았으니 나에게 문전박대 그 이상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다.

리바이가 이런 마을 분위기에서 대화 상대가 돼준 것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시종 내키지 않은 표정이기는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억지 춘향을 시킨 것처럼 미안했다.

그러나 만나서 붙들고 얘기하기가 어려웠을 뿐 길가에서 지나친 아미시들은 한결같이 온화한 느낌을 줬다. 아미시 마을의 도로는 포장, 비포장 할 것 없이 말똥들이 그득하다. 버기(Buggy)라는 아미시 특유의 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탓이다.
랭캐스터 카운티의 스트라스버그, 조지타운 일대를 서너시간 가량 차로 돌아보는 동안 수백대도 넘는 버기와 조우했다. 주로 2인승인 버기에 탄 아미시들중 절반 가량은 남녀 할 것 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거나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남성들은 검은 색 위주 복장, 여성들은 레이스나 장식 혹은 무늬가 없는 복식 일색이었는데 여느 미국 사람들에게서는 여간해서 감지하기 어려운 순수함 같은 것들이 물씬 뭍어났다. 이런 꾸밈없는 옷차림은 내 눈에는 특히 젊은 여성들과 잘 어울려, 아미시 처녀들의 청순미와 건강미는 압권이었다.
아미시들은 자신들의 삶을 애써 수사를 동원해 설명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과 몸짓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신감을 웅변하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아미시는…
불문율 '오드넝'이 지배하는 재침례교파


미국에는 2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아미시가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랭캐스터 카운티와 오하이오주 홈스 카운티가 양대 본거지라 할 만하다.

아미시의 믿음 체계에는 산아제한이 없다. 대여섯씩 자녀를 둔 가정도 흔하다. 앞으로도 인구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미시들이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미국 땅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8세기다. 전기가 보급되지 않았던 때로 이런 저런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기 이전이다.

아미시들의 삶은 오드넝(Ordnung)이라는 불문율이 지배한다. 기독교적 믿음은 물론 생활 양식까지도 이 오드넝에 따른다.
초기의 오드넝은 어느 아미시 집단이고 할 것 없이 물질문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예컨대 전기 사용이 사람을 게으르고 타락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통 300~400 명 규모의 소집단 위주로 생활하다 보니 개별 공동체마다 오드넝이 분화, 진화했다. 문명의 이기들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아미시들이 있는가 하면 자동차를 타는 공동체도 있다. 이래서 아미시는 이제 한마디로 성격을 규정할 수 없는 집단이 돼 버렸다.

홈스 카운티에서는 10대 아미시 여학생들이 자동차를 몰고 휴대폰으로 깔깔 거리며 통화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또 랭캐스터 카운티의 한 마을에서는 아미시 젊은이 너댓이 비 아미시 청년들과 어울려 풋볼에 열중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 젊은이들이 타고온 버기 가운데는 지역 NFL팀인 필라델피아 이글스 장식이 선명해 눈길을 끌었다. 어떤 형태든 수식을 혐오하는 아미시 관행에 비춰볼때 흔한 일은 아니다.
젊은이들이 아미시로 살아갈지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진다. 아미시는 재침례교(Anabaptist)파로 분류되는데 이는 성년이 돼 스스로 세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신념 체계를 반영한다.

아미시들은 미국 최고의 농사꾼으로 알려졌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일반 농가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하다는 게 통념이다. 대를 이어 장기간 농사 노하우를 축적해온 데다 일반 미국 농가에 비하면 노동 집약 농법이 다분히 가미된 탓으로 풀이된다. 아미시들은 청빈한 삶을 추구하지만 먹거리 등을 자급자족하는데다 따로 돈을 쓸데가 많지 않아 대체로 현금이 풍부한 편이라는 게 정설이다.

아미시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비 아미시 마을 사람과 대체로 조화롭게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차를 빈번하게 사용하다 보니 말의 분변이 길가나 상가 근처에 깔려있어 가끔 마찰이 일기도 한다. 비 아미시들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마차 사용을 규제 하려 하는데 자금력이 있는 아미시들은 은행 저축을 보이콧 하겠다는 등의 방식으로 맞대응하며 자신들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아미시는 일체의 폭력을 거부하는데 이 때문에 과거 2차 대전때 병사를 징집하려는 연방 정부와 긴장관계에 놓이기도 했다. 또 대부분의 세금을 내지 않는 반면, 정부로 부터 혜택도 거의 없다. 소셜 시큐리티와 같은 사회보장 연금 체계에서 제외된 것이 한 예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소수라는 점, 문명의 이기에 대한 배척 등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사회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실상 ‘족내혼’ 방식인 혼인 관습 등으로 인해 유전질환이 빈발하는 등의 문제점도 지적된다. 한예로 쌍둥이를 둔 리바이 킹 가족처럼 아미시 가정에는 쌍생아, 다태아가 일반 가정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전문가들은 이를 유전 형질의 풀이 제한된 소규모 집단내의 혼인 관습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일부 아미시들은 멀리 타주의 아미시와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열성 유전질환의 발생을 막으려 애쓰고 있으나 여전히 상당수 아미시들이 마을 공동체 혹은 인근 마을에서 배우자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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