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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사 김영호 대령이 겪은 12·12-끝] '아군끼리 총질' 못잊어

전두환, 악수 건네며 매서운 눈초리, 예편서 제출한뒤 미국행 비행기 올라

<글 싣는 순서>

1. 포탄을 분배하라
2. 한 밤의 총소리
3. 나는 그 날 죽었다

사령관실에서 몇몇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몇몇 장병들에게 부축을 받은 한 장성이 복도로 나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들이 날 쏜다 이놈들이 날 쏜다." 배 부분을 움켜쥔 손 사이로 붉은 피가 솟구쳤다.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었다. 이어 육본 지휘부와 장 사령관 헌병단 소속 중위와 헌병들이 나왔다. 알고 보니 육본 지휘부를 장악하기 위해 온 수경사 헌병단 신윤희 부단장 일행 중 한 명이 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이 권총을 뽑으려는 것으로 착각 오인사격을 한 것이었다. 하 참모부장은 병원으로 후송됐고 나머지는 무장을 해제당했다.

수경사가 장악되면서 상황은 종료됐고 새벽 네 시쯤 전두환 합수부장이 수경사를 방문했다. 장 사령관 및 육본 지휘부는 사령관실에 남아 있고 김영호 군수참모를 비롯한 수경사 참모들은 전 합수부장을 마중하러 현관으로 나갔다.

"전 소장이 악수를 하며 우릴 한 번씩 쳐다보더군요." 불과 얼마 전까지 생사를 걸고 대치했던 세력들이었기에 전 소장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마치 전쟁에서 패한 듯한 착잡한 심정이었습니다. 동시에 내 군생활도 이제 끝이란 생각이 스치더군요."

상황은 끝났지만 몇 시간 더 업무를 처리하다 나와 보니 장태완 사령관은 합수부로 연행됐는 지 없었다. 김 대령은 해가 뜬 지 한참 뒤에야 관사를 찾았다. 경비병에 의해 소식을 알고 있었던 가족들이지만 밤새 뜬 눈으로 걱정하다 김 대령을 만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반겼다.

이후 수경사는 평온을 되찾았고 장태완 사령관 후임으로 노태우 소장이 부임했다. 김 대령은 번민끝에 예편서를 제출했다. 노 소장은 만류했다. "적도 아닌 아군끼리 총질을 하다니 이게 뭡니까. 이제 군생활을 계속할 의욕도 없습니다." 김 대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예편서가 수리됐고 그는 1980년 3월 말 군복을 벗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갑종 137기에서 가장 먼저 대령진급을 했던 2명 중 1명이었던 김 대령의 23년에 걸친 군생활이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그 날 전 죽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생명이 끊어진 거지요."

장태완 사령관에 대해 김씨는 "원리원칙과 규정을 중시하는 강직한 군인"이라며 "당시 수경사령관으로 부임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깝다"고 전했다.12.12는 김 대령 개인에게도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그 날의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다.

〈끝〉

임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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