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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애팔래치아 트레일, 하늘 떠있는 '푸른 산마루 공원길'

Los Angeles

2006.12.2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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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마일 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메인주서 조지아까지 14개주 통과
떠돌이는 ‘외박’이 기본이다. 집에 들어갈 일은 없으니 어쩌다 호텔이나 모텔에 들어갔다면 ‘내박’으로 칠 수 있다. 여행 길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친구집에서 이틀 머문 것을 빼고는 내박을 한 적이 없으니 지난 두달여 가까이를 거의 외박으로 일관한 셈이다.

떠돌이 외박은 말 그대로 바깥에서 자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한데 잠’을 피하기 힘들다. 10월 중순 방심하다가 때이른 기습 추위에 한방 먹었다. 밤 늦게 61번 주간고속도를 타고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테네시로 들어섰을 때였다.

몸도 피곤해서 휴게소에 주차하고 나서 시동 키를 뺀뒤, 바로 침낭을 폈다. 눈을 붙인지 한 서너시간 쯤 됐을까. 코와 얼굴이 얼굴이 떨어져 나갈듯 시려서 잠에서 깼다.

차창을 둘러보니 가볍게 얼음이 얼어 있다. 수은주가 곤두박질한 것이다. 반도국가나 섬나라에 비해 대륙의 내륙 지방은 날씨 변덕이 심하다. 특히 산을 끼고 있는 내륙지역은 더하다.

주섬 주섬 옷을 주워 입는데 옷이 냉장고에서 꺼낸 것처럼 차디차다. 위 아래 이가 저절로 부딪히며 달달달 소리를 낸다. 이런 때는 별 수 없다. 유해 개스를 가득 내뿜을 오래된 중고차의 히터를 장시간 켜놓고 잘 수는 없는 일이다.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선 휴게소에 빠져나가, 두어시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어쨌든 몸을 움직이니 덜 춥다. 멀리 동쪽 하늘이 뿌연 것이 새벽이다. 다시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청했다.

해뜨기 전후의 온도 차는 크다. 오뉴월 하루 햇빛이 어디냐는 말도 있지만 영하를 오락가락하는 날씨에서 기온 4~5도 천국과 지옥 차이일 수도 있다.

떠돌이라면 한데 잠은 피하기 어렵다. 따로 정처가 없으니까. 한데 노숙은 떠돌이 만의 운명은 아니다. 행선지가 확실하고 여행 경로가 정해진 사람들 가운데도 한데 잠이 기본인 사람들이 있다.

하이커와 자전거 여행자가 그들이다. 재미삼아 집 근처의 산을 오르내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수십 일 혹은 수백 일씩 길가나 숲 속에서 잠을 자는 ‘꾼’들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미국에서 하이커와 자전거족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도처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콕 집어 얘기한다면 애팔래치아 산맥 중에서도 블루리지 파크웨이(Blue Ridge Parkway·푸른 산마을 공원길) 코스가 내놓으라하는 하이커와 자전거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어찌보면 이 코스는 이들에게 일종의 성소 같다.

블루리지 파크웨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한한 길이다. 버지니아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약 470마일을 문자 그대로 산마루로만 내달리는 공원 길이다.

무슨 공원 길이 그렇게 긴가하고 의구심을 가질 법한데 정말이다. 폭이 10야드가 좀 더되는 왕복 2차선의 공원 길이다. 미국 연방정부 국립공원 관리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길 자체가 공원인 도로다.

자동차 운전자를 십분 배려해 만들었는데 마일리지로만 주행 시간을 짐작하고 달려들었다간 큰 코 다친다. 제한 속도가 일관되게 시속 45마일이다. 45 마일 이상으로 달리면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구배와 경사가 만만치 않은 길이다.

블루리지 파크웨이 양쪽으로는 기막힌 풍광이 470마일 내내 이어진다. 자동차 운전자들을 위한 전망대만 수백 곳인데 최소한 1박2일은 잡아야 겉핥기라도 주파가 가능한 환상의 길이다. 구비구비 산마루를 따라 달리다 보니, 이틀 간 운전해도 피로감은 고속도로에서 사나흘 이상 운전한 정도다.

한데 이 길을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것도 470마일 공원길 구간에 그치지 않는다. 이 길을 남북으로 확대한 것이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인데 장장 2600마일이 되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두발로 걸어서 완주하는 이들이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흔히 AT로 불린다. 하이킹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을 꿈꾸는 길이다. 푸른 산마루 공원길 구간과는 사실상 중첩되는, 남서에서 북동 방향으로 나있는 산 길이다.


먼지 세상 떠나 '하이킹 6개월 코스'

AT는 북쪽으로 메인주부터 남쪽의 조지아까지 동부 14개주를 통과한다. 체력과 정신력을 겸비한 특급 하이커라면 100일 안팎이면 종주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 하이커라도 보통 수준이라면 넉넉히 6개월 정도는 잡아야 한다.

도전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완주자는 5% 안팎이다. 그만큼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수전 게일 에이어는 이 코스를 두번 완주한 여성이다. 수전은 만 30년전인 1976년 대학을 갓 졸업한 뒤 AT에 처음 도전해 성공했다. 요즘은 여성 도전자 숫자가 좀 되지만 당시는 가뭄에 콩나듯 하던 때였다.

수전을 만난 것은 푸른 산마루 공원길 옆의 한 유스호스텔에서 였다. 그녀는 옛날 AT의 흔적을 더듬다가 해가 저물어 호스텔 신세를 지고 있었다. AT는 수십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변해서, 수전이 옛날 걸었던 그 길과 100% 똑같지는 않다.

얘기를 나누면서 수전을 찬찬히 뜯어봤는데, 아무리 봐도 그 험난한 산길을, 그 것도 두 번씩이나 완주한 여성같은 면모는 찾을 수 없었다. 체구와 체형이 전문 마라토너와 비슷할 거라고 상상했는데 전혀 아니다.

서양 여성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동양 여성을 기준으로 해도 작은 체구다. 그나마 나이들면서 체구가 좀 불은 거라고 했다. AT에 처음 도전했을때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90파운드에 불과했다. 그 몸으로 몸무게의 딱 절반인 45 파운드짜리 배낭을 메고, 1만리가 넘는 산 속 길을 걸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산이 너무 좋았어요. 이 호스텔 근처에 할머니 집이 있어서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요, 12살때였던가, 친구로부터 AT라는 게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부터 AT 종주를 꿈꾸다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도전한 거지요.”
76년 3월, 아침 저녁으로 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수전은 AT 남쪽 출발점인 조지아 산 속에 첫 발을 디뎠다. 메인주 종점까지 7개월여에 걸친 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수전의 AT 종주는 단독이었다. 두 사람 이상이 복수로 움직이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떠돌이를 하면서 절감했지만, 하나와 둘 이상은 질적으로 다르다. 단독 완주는 동반 완주에 비해 너댓배 이상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산속 길에서 숱한 날 밤의 고독, 절망감…. 이런 것들을 대학을 갓 졸업한 처녀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200여일 동안 산길을 걸으면서 감기도 몇차례 걸리고, 가벼운 부상도 있었지요. 여름에는 폭풍우를 만나기도 했고 메인주에서는 큰 눈이 내려 육체적으로 좀 힘들기도 했어요.”
수전은 담담히 30년전을 회상했다. 산 길을 갈때도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담담한 편이었다고 했다. 끝내고 나니까 기쁜 정도였다.

“어떻게 말로 설명하나요. 그냥 몸에 산사람 피가 흐르나 봅니다.” 수전은 가만히 보니, 산에 중독된 사람이다. 그 자신도 산과 결혼한 셈치고 산다고 했다. 두번째 AT는 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것이 추위 때문에 훨씬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수전의 3번째 장거리 산길 완주는 서부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이었다. PCT야 말로 하이커중의 하이커들만 성공하는 트레일이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캐스케이드 레인지를 따라 캐나다 접경에서 멕시코 국경까지 남북으로 난 이 코스는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동물의 기습을 받을 위험도 AT보다 훨씬 크고 무엇보다 트레일 중간 중간 보급로가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다. 수전도 “AT보다는 훨씬 힘들었던 것 같다”고 회고한다.

AT 2번에, PCT 한번, 이 정도면 확실히 산에 미친 사람이다. 수전한테 양해해 달라며 “당신 미쳤다”고 한마디 해줬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당신도 비슷한데…”라는 것이었다. 옆에 앉아 우리 둘의 얘기를 듣고 있던 유스 호스텔 안주인인 할머니가 “세상에 안 미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미쳐 산다”고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거든다.

사실 이날 수전을 만나기 전, 또다른 ‘미친 친구’와 잠깐 조우했었다. 푸른 산마루 공원길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 경계쯤에서였다. 독일에서 왔다는 토니 호프만(24)이었다.
토니는 자전거로 푸른 산마루 공원길을 타고, 나와는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여전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는데 남미 대륙의 끝이 이번 자전거 여행의 목적지라고 했다. 수만리가 넘는 여정이다. 토니는 1년 일정으로 여행하는데, 실제로는 조금 덜 걸릴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는 이번 여행 전에도 독일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자전거로 주파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일을 해서 돈이 생기면 곧바로 대륙을 종단, 횡단하는 자전거 타기를 한다. 토니 또한 확실히 자기 방식으로 미쳐 사는 사람이다. 그 역시 수전처럼 잠자리는 대부분 숲속의 빈터에서 해결하곤 한다고 말했다.

토니에게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자전거를 타느냐고 물었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너의 능력, 체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냐”고 재차 질문을 던졌는데 토니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나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마음이 끌려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푸른 산마루 공원길의 북단인 버지니아에 이르는 동안 수전이나 토니 부류로 짐작되는 사람들을 중간 중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늘에 떠있는 듯한 산마루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어서 그랬을까. 저 밑 진흙먼지 속 세상에 한 발을 걸쳤으되, 어쩐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느낌이 선연한 이들이
었다.


▶그레이트 스모키·셰난도어
애팔래치안 '아름다움의 결정판'


블루 리지 파크웨이(푸른 산마루 공원 길)의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산줄기는 애팔래치안 산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름다움을 집약해 보여주는 것이 그레이트 스모키(Great Smoky) 국립공원과 셰난도어(Shenandoah) 국립공원이다.

그레이트 스모키는 푸른 산마루 공원길의 남단에, 셰난도어는 북단에 붙어있다. 이들 두 국립공원은 푸른 산마루 공원길과 함께 지도에서 보면 마치 손오공의 여의봉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푸른 산마루 공원길이 봉의 막대고, 그레이트 스모키와 셰난도어는 막대 양쪽 끝에 달린 구처럼 생겼다.

그레이트 스모키는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데 산세와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색조가 일품이다. 산세는 험난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데 유치원생이 그린 비뚤비뚤한 선처럼 생긴 산마루의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그레이트 스모키의 단풍은 남동부에서 단연 빼어나다. 주변 지역보다 고도가 월등 높은 탓에 온대성, 아한대성 수종이 산에 가득하다. 정상인 클링먼스 돔(Clingmans Dome)은 해발고도가 6600피트 조금 넘는다. 발치로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의 중소도시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정상 바로 밑까지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정상의 전망대까지는 20분 남짓이면 올라갈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고도가 높다보니 산소가 다소 희박해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셰난도어는 워싱턴DC에서 자동차로 두시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버지니아에 속해 있는데 풍광은 그레이트 스모키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셰난도어의 백미는 공원 한 가운데를 종단하는 약 100마일의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는 푸른 산마루 공원길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길은 늦가을에는 단풍 구경온 행락 차량으로 교통 혼잡이 아주 심하다. 셰난도어 공원은 등산로가 아주 잘 발달돼 있는데 일부 트레일은 낙차가100피트가 넘는 폭포를 끼고 있는 것도 있다. DC에서 가까워 겨울 혹한기를 제외하곤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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