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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미시시피강 (1)- 230년간 영광의 미국 역사 품은채 2300마일 내달려 온 생명의 젖줄

Los Angeles

2007.03.0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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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지친 여정 속 '여행동지' 합류로 생기, 3000마일 미시시피의 유장함 매력에 '푹'
사람이 우주라는 걸 이번에 홀로 여행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종교인이나 철학자들이 말하는 그런 우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2320마일의 미시시피 리버.

2320마일의 미시시피 리버.

오래시간 홀로 차를 몰고 또 긴긴 겨울 밤을 지새면서 내곁에 누군가 한 사람만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했다.

그때마다 그 한 사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내게 우주이며 온 세상일 것이었다.

홀로라는 것과 함께라는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반면 둘이나 셋 혹은 그 이상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혼자와 둘 이상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는 골프에서 홀인원과 니어(Near. 혹은 Close)의 차이와 비슷하다. 홀컵에 공이 아무리 가까이 붙어도 니어는 니어일 뿐이다.

홀컵에서 공이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는 단지 양의 차이일 뿐이다. 반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간 공과 홀컵 밖의 공은 질적으로 다르다.

양적인 변화의 축적 즉 공이 홀컵에 점점 가까워지면 종국적으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홀인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유물론적 변증법의 원리다.

한데 이런 일은 물질의 세계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정신 세계에서는 아니다. 내가 누구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해서 상대의 마음이 내게 전해져 올리는 없다.

사람은 그래서 불연속적인 존재다. 혼자면 혼자일 뿐이다. 혼자는 함께의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 외로움이 사람의 본질중 하나인 이유이기도 하다.

연말연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같은 승차 유랑인이나 홈리스들에게는 외로움과 단절감이 더욱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LA의 박군이 내게 달려온 것은 크리스마스 전날쯤이었다. 회사원인 그는 이에 며칠 앞서 조심스럽게 내 여행에 자신이 동반할 수 있는지를 타진해왔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열흘 안팎의 긴 시간을 죽일 마땅한 대책이 없던 차였다. 이미 동성애자들의 구애도 여러차례 받았던 몸 5~6년 가까이 알고 지낸 그와의 동행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저녘 시간 뉴올리언스 공항에서 그를 만나 차에 태웠다. 박군은 "차를 몰며 이리저리 떠도는 생활이 무척 부러웠다"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씩 웃었다. '부럽기만 하지는 않을 걸.'

조금은 본때를 보여줄 생각으로 강행군 코스를 잡았다.

그는 어디로 데리고 가든 오케이라고 말했다. 공항에서 곧장 차머리를 북으로 꺾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캐나다 근처까지 치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남북 종단 왕복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12월 말이면 루이지애나 같은 남쪽은 몰라도 미네소타나 아이오와 등 북쪽은 상시 영하권이다.

둘이 햄버거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계속해 55번 주간고속도로 북쪽으로 달렸다. 루이지애나에서 미시시피주로 넘어선 뒤 밤 10시쯤 '숙소'로 들어섰다. 두 남자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수은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두 사람 모두 체감했다. 바지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질적으로 달랐다. 추운 날씨에 위안이 됐던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37.5도 짜리' 온도라는 점이었다.

차안에 둘이 누우니 공간이 가득찬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이 엄마와 잠자리에서보다 가깝다.

박군과 나는 금세 '거리의 포로'가 돼버렸다. '멀리있는 친척이 이웃 사촌만 못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람 사이의 정은 거리와 비례한다.

박군과 나와의 거리는 얼굴을 기준으로 하면 1~2피트 몸으로 치면 붙어있다 시피했다.

이 정도면 젖먹이와 엄마사이의 거리 혹은 부부지간이다.

공간학(Proxemics.프록시믹스)은 1피트 반 이내의 거리를 친밀거리(Intimate Distance)로 규정한다. 상대를 껴앉고 부비고 속삭일 때의 간격이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최고 25피트 이상까지 4단계로 나눠 설명하는 프록시믹스 이론 중 두말할 것 없이 가장 가까운 단위다.

적잖은 시간 동안 그와 알고 지내왔지만 서로에게 그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이 이어졌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집안 얘기며 연애 시절 같은 개인사를 줄지어 털어놨다.

사실 심중을 털어놨다고 할 것까지도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저편으로 한밤중에도 쉼없이 흘러가는 미시시피의 강물처럼 우리의 얘기도 한없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LA에서 뉴올리언스까지 비행기를 바꿔타며 하루 종일 날아온 여행의 피로가 두 사람을 입막음할때까지 두런 두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이날 밤에서야 자세히 알게됐지만 박군은 '여행꾼'이었다. 10여년전 호주와 뉴질랜드를 일하며 1년 여 동안 쏘다닌 '전과'가 특히 돋보였다. 성격이 아주 차분한 탓에 전에는 감지하지 못했지만 '바람의 아들' 기질이 다분했다.

잠자리에 들기전 승차 유랑인의 세면 용변 해결법을 일러줬는데 단박에 이해하고 따라했다.

미시시피 강 왕복은 짧게 잡아도 3000마일에 이르는 간단치 않은 코스다. 3000 마일 이라면 정확히 LA에서 뉴욕까지 거리다.

미시시피 강 좌우로 걸쳐있는 주만도 10개다. 이런 미시시피를 3박 4일 길어야 4박 5일 이내에 끝낼 작정이었으니 초치기 왕복 달리기 여행이라 할만 했다. 그것도 섭씨로 영하 5~6도 이하인 한겨울 여행이니 여러모로 간단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한데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스피드를 중시하는 나의 여행 스타일은 박군이 선호하는 유형은 아니었다.

박군은 느긋한 성격에 걸맞게 한 곳을 오랫동안 아주 꼼꼼히 들여다보는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는 또 농촌보다는 다양한 역사를 볼 수 있는 도시 구경을 원했다. 나는 드라이브 자체를 즐기고 콘크리트 구조물 가득한 도시보다는 자연에 훨씬 큰 애착을 느낀다.

미시시피 강은 이런 점에서 우리 둘 다를 만족시키는 코스라고도 할 수 있다.

하류부터 시작해서 상류쪽으로 뉴올리언스 멤피스 세인트루이스 미네아폴리스 같은 굵직하고도 개성 강한 도시들이 줄지어 있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는 다양한 자연이 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는 아열대 지역으로 우거진 숲을 구경할 수 있다. 미주리와 아칸소 일리노이의 대평원 지역은 가슴을 다 시원하게 한다.

북쪽의 미네소타와 위스컨신은 온대와 아한대 수림이 넉넉하게 공존하는 지역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겨울의 짧은 해였다. 해다운 해가 떠있는 시간은 하루 7시간 남짓이다.

특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연중 일조시간이 가장 짧은 시기였는데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는 칼바람의 강추위에 행동반경이 극히 제한됐다.

계절이 받쳐주지 않는 이런 여행은 다소 무리할 수 밖에 없다.

밤 11시 혹은 자정 안팎까지 저녘시간에는 최대한 밤 늦게까지 차를 몬다.

또 새벽에는 3~4시에 일어나 또 가속 페달을 밟는다. 바깥이 냉동창고 처럼 얼어붙어 있을 때는 이렇게 해야 몸을 녹일 수 있다.

두 사람이 내뿜는 콧김이 유리창에 달라붙어 서너시간만 지나면 얼음이 되는 판국이었다.

하늘에 별이 총총한 가운데 어둠이 짙게 내린 대지를 쏜살같이 뚫고 지나가는 한밤중 드라이브는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혹 몸살이라도 날까봐 박군은 재우고 나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한밤중 혹은 새벽 길을 달렸다.

북상하면서 55번 주간고속도로를 타고 〈鳴?세인트루이스에서 70번 주간고속도로로 바꿔탔는데 밤중 도시의 불빛은 묘한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낮에 보는 도시와 밤에 보는 도시는 화장한 여인과 그렇지 않은 여인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대조적이다.

특히 밤중 강물에 아른거리는 도시의 불빛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이튿날 잠에서 깬 세인트루이스는 내가 스치듯 다녀간 줄도 몰랐을 것이다. 곤히 잠든 연인의 입술에 도둑 키스를 날린 기분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대표적인 동토 미네아폴리스를 찍고 위스콘신으로 건너가 남쪽으로 차머리를 밟았다.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와는 달리 국도와 지방도를 자주 이용했다.

국도 운전은 속도가 더딘데다 길이 구불구불해 피로감을 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남행은 항상 홀가분하다. 돌아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특히 며칠간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남쪽나라'로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부터 훈훈해 진다.

박군은 초치기 미시시피 왕복 여행의 당사자가 된 것이 신기한듯 틈만나면 지도를 꺼내 통과한 주를 점검하곤 했다. 아마 그에게는 미시시피에서의 3박 4일이 비몽사몽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질 급한 나는 미시시피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그 유장함에 주목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매력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다.

여유로운 성격의 박군이 때로는 급류로 돌변하는 미시시피에 한번쯤은 매력을 느꼈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 본토 식수 40% 담당 '그레이트 리버'

강은 길든 짧든 바다까지 이어져야 대접을 받는다. 미시시피가 더 긴 미주리를 제쳐놓고 미국을 대표하는 강으로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320마일의 미시시피는 미네소타에서 발원해 멕시코 만에 이르러 강물을 풀어놓는다. 2340여 마일의 미주리는 미시시피의 지류일 뿐이다.

'미시시피'는 상류에 터를 잡고 살던 오지브웨 인디언들의 말에서 유래했다. 영어로 풀이하면 '그레이트 리버' 위대한 강이요 큰 강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 수계는 유량 기준으로 미국 본토 48개 주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니 미시시피 없는 미국의 상하수도는 상상하기 힘들다.

하류인 뉴올리언스에 쏟아놓는 강물의 양은 초당 20만~70만 큐빅피트로 세계에서 5번째 규모다. 그러나 이 물은 멕시코 만의 해수와 곧바로 섞이지 않는다.

플로리다 서해안을 타고 남쪽으로 흘러가다가 다시 플로리다 동해안을 타고 북상해 조지아 남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수천마일을 여행한다.

미국의 남해안 격인 걸프만 일대와 플로리다 해안을 황금어장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서야 해수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미시시피는 또 상류로부터 엄청난 양의 토사를 하류로 실어 날라 해안선의 변화를 가져왔다.

하류인 뉴올리언스의 앞바다가 지난 5000년 동안 바다쪽으로 길게는 50마일이나 밀려난 게 대표적인 예다.

토사의 퇴적은 또 매 수천년마다 강의 흐름을 크게 바꿔 놓곤했다. 실제로 50년대에 미시시피 하류의 본류가 앳차팔라야 강(Atchafalaya River)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연방 정부가 강의 흐름이 바뀌지 않도록 하는 대공사에 나서기도 했다.

'옛강 보존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공사는 3억 달러가 투입돼 지난 86년 종결됐다. 이 같은 프로젝트가 없었더라면 하류에 위치한 뉴올리언스 등 주요도시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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