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서부극의 대부이자 상징적인 존재로 게리 쿠퍼와 함께 널리 알려져 있는 배우 존 웨인(사진)은 뉴포트비치에서 말년을 보냈다.
지난 1979년 6월 OC공항이 존 웨인 공항으로 개명되면서 OC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공항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카우보이 옷차림을 한 9피트 크기의 존 웨인 동상처럼 실제로 그는 6.36피트 장신이었다. 1907년 아이오와주 윈터셋에서 태어난 존 웨인은 1916년 아버지가 약사로 일하게 된 글렌데일에 정착했다.
윌슨 고등학교 시절 미식축구를 시작, 1924년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USC에서 법과 예비과정을 전공했다. 1928~29년 20세기 폭스 영화사에서 소품담당으로 일하게 되면서 존 포드 감독과 만났고 단역으로 3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다 라울 월시 감독의 눈에 띄어 1930년작 '더 빅 트레일'에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존 웨인이란 예명을 사용했다.
이후 10년간 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떨치다가 1939년 존 포드 감독을 아카데미상 최우수감독상 후보에 오르게 한 '역마차'에 출연하면서 32세에 서부극의 아이콘이 됐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수색자' '조용한 사나이' '리오 브라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등으로 인기몰이를 하다가 1969년작 '진정한 용기'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60년작 '알라모'에선 감독, 주연, 제작까지 맡았다.
존 웨인은 1954년 유타주 사막에서 영화 촬영 중 출연진 및 제작진 전원이 방사능에 노출된 후 1964년 폐암에 걸려 10여 년간 투병했고 지난 1979년 6월 11일 72세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