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샘 레이미 각본 : 샘 레이미, 이반 레이미 외 출연 :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랑코 외 스튜디오 : 컬럼비아 픽처스 장르 : SF, 액션, 모험 등급 : PG-13
영웅도 인간이다. 아무리 초자연적 힘을 가진 영웅이라도 자아도취와 자기모순에 빠져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이를 딛고 일어서는 순간, 그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영웅’에 열광한다.
사진=컬럼비아 픽처스 제공.
영웅이 돌아왔다. 배트맨보다 밝고, 수퍼맨보다 명랑하고, 엑스맨보다 노멀한 수퍼히어로, ‘스파이더 맨’이 세 번째로 스크린을 찾았다. 그리고 역시나, 이 ‘영웅적 블록버스터’는 기다려온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거미에게 물린 후 초자연적 능력을 갖게 된 피터 파커는 이제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자신에 익숙해져 있다. 영웅으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도시를 지키는 일은 물론, 연인 엠제이와 사랑을 키워나가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 친구에서 원수가 되어버린 해리까지 기억상실증으로 과거를 잊어, 다시 예전처럼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피터에게 또 다른 도전이 찾아온다. 사랑하던 이모부를 죽인 진짜 범인이 탈옥해 초능력을 가진 ‘샌드맨’이 되어 나타난 것.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던 엠제이와의 사이까지 삐걱댄다. 분노와 좌절에 휩싸인 피터에게, 외계에서 떨어진 운석으로부터 흘러나온 이상한 물질이 스며든다. 그 물질 때문에 피터의 스파이더맨 수트가 검은색으로 변하고, 변색된 스파이더맨 수트는 피터에게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검은색 수트는 스파이더 맨이 아닌 피터 파커 그 자신까지 변질시킨다. 피터는 우쭐한 도취감과 과시욕, 복수심 등에 물들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 적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스파이더 맨 3’는 ‘외부의 적’에 앞서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적’을 이기고 거듭나가야 하는 영웅을 묘사하며, 캐릭터의 깊이를 더하고 이야기에 대한 공감도를 한층 높였다. 화해와 용서, 자기극복 등의 다소 철학적 메시지들은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관객들에게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요리됐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자랑인 입체영상은 한층 빠르고 화려해졌다. 특히 건물 사이를 휘젓는 스피디한 입체감은 보는 이가 멀미를 느낄 정도로 짜릿하다. 스파이더 맨과 그의 적들이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눈에 아른 거릴 정도로 강렬하다. 샌드맨이나 베놈 등의 새로운 적들이 변형을 거듭하는 그래픽은 실사의 느낌이 다소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편에선 그다지 돋보이지 않던 유머감각이 적당히 버무려졌다는 점도 이번 편의 강점이다. ‘범생이’ 피터가 ‘느끼남’으로 변해 건들거리며 다니는 중반부의 묘사는 꽤 큰 폭소를 자아낸다. 유머라고 하기엔 너무 상징적이긴 하지만, 영웅을 갈망하는 시대를 사는 미국인들을 위해 스파이더 맨이 성조기 앞에서 멋진 포즈를 잡아주는 장면을 끼워넣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미국이 성조기색 수트를 입은 스파이더맨에게 열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