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유럽인들의 신대륙 이주 및 정착과 관련해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도시가 3개 있다.
연대순으로 열거하면 먼저 플로리다의 세인트 어거스틴. 1565년 스페인 탐험가들이 건설한 북미 대륙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다.
두번째는 요즘 400주년 행사로 떠들썩한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 3일 시작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버지니아 방문을 맞아 다시금 전국적 조명을 받고 있다. 영국계 이주민들이 1607년 신대륙에 만든 첫번째 정착촌이다.
마지막으로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종교 탄압을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타고 유럽에서 제임스타운으로 항해하던 청교도들이 풍랑 때문에 예정 항로에서 벗어나 얼떨결에 정착한 곳이다.
이들 3개의 도시중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지명은 두말 할 것 없이 매사추세츠 플리머스다. 1620년 플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을 순례시조(Pilgrim Fathers)라고 부르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플리머스를 유달리 중시하는 이같은 역사관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비판이 제기된다. 플리머스에 13년 앞서 정착촌이 건설된 제임스타운, 그리고 제임스타운 보다도 42년이나 오래 된 세인트 어거스틴의 역사적 의미가 ‘실제보다’ 크게 간과되어 왔다는 지적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필자도 미국에 이민 오기 전 제임스타운과 세인스 어거스틴에 대해서는 별로 배운 기억이 없다.
세인트 어거스틴과 제임스타운이 미국 역사에서 플리머스에 비해 소홀한 대접을 받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세인트 어거스틴은 한 마디로 스페인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다. 영국계 후손들로부터 과소평가를 받아온게 어쩌면 당연하다. 제임스타운은 좀 더 상황이 복잡하다. 우선 남북전쟁에서 남부의 패배가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의 주도권을 잡은 북부인들이 남군의 본거지였던 버지니아의 역사적 비중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시각이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되새겨보면 쉽게 이해할만 하다. 또 필그림 파더스가 미국 최대 명절인 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전통을 만들었고 그 후손들이 하버드 등 명문대학을 설립, 미국 교육의 주도권을 잡은 게 제임스타운을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만든 요인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제임스타운과 세인트 어거스틴에 대한 역사 평가에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제임스타운의 경우 400주년을 맞아 재조명작업이 한창이다. 자유기업정신, 법치주의, 민주정부 구성 등 미국의 토대가 제임스타운에서 싹텄음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세인트 어거스틴은 미국내 라틴계 주민의 증가에 힘입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라틴계 인구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머지 않은 장래 세인트 어거스틴의 역사적 평가절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 본다. 언젠가 한인 등 미국내 아태계의 영향력이 대폭 확대된다면 아시아대륙에서 넘어왔다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역할 재평가도 가능할 것이라는 농담마저 나온다.
아무튼 제임스타운 400주년을 맞아 지금 미국에서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어차피 시민권 시험에 역사문제가 출제된다고 하니 한인들도 우리가 몸 담고 사는 미국의 역사를 보다 관심을 갖고 탐구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오늘을 이해하고 내일을 전망하는 데 더 없이 유용한 도구다. 미국 역사의 출발점인 제임스타운 400주년 축제를 가까이서 지겨볼 수 있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