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순자화백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산수화다. 추화백은 계절마다 모습이 바뀌는 한국의 자연경치를 보면 화폭에 담지 않을 수가 없는 유혹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 이율곡을 조선 최대의 학자로 키워낸 신사임당은 우리 겨레를 대표하는 어머니상. 고국 방문 길에 들렀던 강릉 오죽헌 뜰에서 세월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신사임당의 온화함과 고결함을 온 몸으로 호흡했다.
소선(笑嬋) 추순자(73.한국화가)씨에게선 겨레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모습이 발견된다. 그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는 감동적인 한 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다. 4살 때 청각을 잃은 큰아들 김형균씨를 위해 추씨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 말과 글을 가르쳤다. 어머니의 눈물 겨운 교육 덕에 아들 김형균씨는 정상인들과 같이 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편지도 붓글씨로 쓸 만큼 서예를 생활화했던 그녀는 막내를 낳고 난 31세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올해로 붓을 든 지 40여 년 필력 키우기 위해 신문지에 일자로 획을 긋고 난을 꺾었던 날들이 아득한 옛일로 느껴진다.
사군자를 그리기 위해 화선지를 펴고 먹을 갈며 준비를 하다 보면 어수선했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져 있다. 마음을 모아 대상을 그리고 하얀 여백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한국화. 그 위에 한두 구절 멋들어진 한시도 적어 넣느라 그림을 시작하며 글씨도 함께 배우게 됐다.
1978년의 첫 개인전 이후 서울 일본 대만 미국에서 6회의 개인전을 치렀고 그룹 전은 80여 회에 달한다. 그저 좋아서 했을 뿐인데 여성예술문화상 일본 제17회 전일전 예술문화상 등 여러 상도 주렁주렁 받았으니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녀는 현대 한국화 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시민대학 강단에 서다가 5년 전 미국으로 건너와 한국화 동호회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70세 생일을 맞았던 3년 전 9월에는 서울 하나로 갤러리에서 고희전을 열기도 했다.
3자녀들은 모두 어머니를 닮아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큰아들 김형균 씨는 LA에서 활동하는 한국화가.
2007년 벽두 본보에 '연'이라는 제목의 돼지 가족 그림이 발표되기도 했고 어머니와 함께 LA 장애학교를 돕기 위한 모자 2인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딸 김현진 양은 대만에서 활동 중인 판화작가. 응용미술을 전공한 막내 아들은 한국에서 광고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선비의 4벗이라는 사군자는 서예 기법을 그대로 적용시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예로부터 필획 자체가 선비의 인품을 반영한다고 해서 인성을 갈고 닦는 수단으로 여겼던 그림들이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먹을 갈며 그림 그릴 준비를 하는 그녀의 자태가 단아하고 곱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산수화. 그래서 개인전에서도 산수화 작품을 가장 많이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풍경 좋은 시골로 자주 스케치를 나가곤 했었어요. 계절마다 모습이 바뀌는 우리나라의 산들을 보면 화폭에 담지 않을 수가 없는 유혹을 느끼죠."
5년 전부터 추순자씨는 한국화 동호회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 전통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늦깎이 학생들은 수묵화의 매력에 푹 빠진 모습들이다. 취미를 공감대로 친교를 나누는 만남을 그녀는 귀하고 아름답게 여긴다.
문하생들과 함께 시작한 회원전이 벌써 6회째를 맞았다. 매번 색다른 전시회를 위해 그녀는 창조력을 한껏 발휘한다.
추순자씨가 이끄는 한국화 동호회 클래스는 한국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다. 클래스는 수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 9562 Garden Grove Blvd. Garden Grove CA 92844. 문의 (714) 778-3072 244-5998. 그녀는 한국화에 관한 사이버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수묵감성과 함께 따순 정이 오가는 단아한 뜨락'을 독자들도 한 번 방문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