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세상과 어울리기 힘든 사람'이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아버지가 되고 세상을 살다보니 이제서야 새삼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지조의 시인' 아니 그보다 더 유명한 청록파(靑鹿派)의 한 사람인 조지훈(1920~1968)이다.
세상살이 모른 채 문우들과 모여 시를 논하고 시를 교환하며 시집을 내다 요절한 그 시인의 장남이 환갑을 넘어 부친의 시와 삶을 회고하는 평전 '승무의 긴 여운 지조의 큰 울림: 아버지 조지훈-삶과 문학과 정신'을 냈다.
◇시인 아버지수필가 아들=아들 조광렬(62)씨는 퀸즈 더글러스턴에 사는 건축가다. 시(詩)와 학문 나라 걱정에 가정을 뒷전으로 하던 글 짓는 부친에 반발한 아들은 사람들이 사는 터를 짓기 위해 미국 유학까지 왔다. 그 아들이 59세에 수필가로 등단 후 최근 3년간 부친의 회고록에 매달렸다.
"아버지가 생전에 가족문집을 내자하셨던 적이 있지요.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던 글이 일반 독자에게 읽기 좋은 책이자 전문가들도 만족할 수 있는 책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방대한 분량이 됐습니다."
629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가족사이자 평전이며 회고록이다.
◇승무에서 청록파까지="한국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입니다. 한국인만큼 시를 사랑하는 민족이 또 없지요."
조지훈 시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승무'는 조 시인이 약관 16세에 쓴 시였다. 한성준 최승희 수원 용주사 이름 모를 승려의 춤을 본 후 2년간 갈고 닦아 탄생한 불후의 명작이다.
"얇은 사(紗)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란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일제강점기에서 해방기 그리고 독재정권을 지나면서 조 시인은 선비정신을 일깨운 행동하는 지성이기도 했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며 지도자의 것이다"라고 설파한 조 시인의 언행일치 행적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낙화(落花)-
스무살 때 조 시인이 창씨개명을 피해 첩첩산골 오대산 월정사로 은둔해 쓴 이 시는 관조의 미학의 돋보이는 작품이다.
'문장'지로 등단한 청록파 시인 박두진.박목월.조지훈은 60세가 되어 '백록파' 문집을 내자고 약조했지만 조 시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72년 남산에 2006년 고려대학교 교정에는 시비가 세워졌고 지난 5월엔 고향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는 지훈문학관이 개관했다.
◇글 짓기와 집 짓기="'시인의 아들'이라는 점이 살아가는데는 손해였지요." 조광렬씨는 부친의 명성으로 인한 선입견으로 불편한 사회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해방둥이로 주실마을에서 태어난 조씨는 홍익대학교 건축과를 졸업 후 현대건설에서 근무하다 미국으로 유학왔다.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석사를 받은 조씨는 83년 귀국해 쌍용.현대.선경 등 대기업의 이사를 거쳐 건축사무소를 운영했다. 그렇게 9년을 살다가 미국으로 역이민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