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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미국 대륙기행] 유타주 힐데일 '일부다처' 원리주의 몰몬교 본거지, 폐쇄적이지만 순박한 모습

대부분 방 8~9개…집 구조 모텔처럼 획일적, 족내혼으로 인해 '희귀 유전병' 확산 우려도

남편 한 사람에 아내가 여럿이라···. 오늘날, 그 것도 미국이란 나라에서 ‘내놓고’ 일부다처제를 근간으로 삼는 공동체를 찾아가는 내 심경은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특히 유랑인 생활에 따른 가치관 변화로 내 스스로 혼란을 겪는 와중이어서 기분은 더더욱 묘했다.

일반 몰몬 신자인 켄트 할아버지. 일부다처 몰몬들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했다.

일반 몰몬 신자인 켄트 할아버지. 일부다처 몰몬들에 대한 혐오감이 상당했다.

삶을 일단 ‘덧없는 일’이라 치부하고, 기존 가치관의 해체 혹은 재조정 국면을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형국에서 난생 처음인 일부다처제 사람들과의 조우는 머릿속을 더 한층 어지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심경은 15번 주간고속도로에서 내려 유타주의 59번 지방도로로 갈아탈 즈음, 일순간 깨끗이 정리됐다. 대신 두려움과 그에 따른 긴장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나오면 몸싸움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혹 숨어서 고무 총알이라도 날리는 작자가 있지는 않을까.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지만 당장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이단 종교 집단에 대한 나의 부정적 선입견은 '일부다처 몰몬들' 이라고해서 예외일 수 없었다.

광기 폭력성 음험.... 이제까지 한번도 이른바 이단으로 낙인 찍힌 사람들과 직접 접촉해본 적이 없건만 나는 '자동적으로' 그들을 나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었다.

힐데일(Hildale)에 들어설 때 사주경계를 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나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힐데일은 이웃 마을인 콜로라도 시티(Colorado City)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일부다처 몰몬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동네다.

힐데일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대로인 59번 도로 주변에는 눈을 씻고 봐도 마을을 알리는 제대로 된 표지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곳이 여느 시골 마을이 아님을 알아차리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집들의 모양새가 달랐다. 단층이건 이층 짜리건 가릴 것 없이 생김새가 모텔 비슷하다. 대부분의 방들은 바깥에서 봐도 똑 같은 규격임을 알 수 있게 배열돼 있다.

창문에는 예외 없이 커튼이 쳐 있는데 커튼 또한 같은 건물이라면 소재며 생김새가 한가지다.

방의 배열들로 보아 일부다처제에서 아내들은 결혼 순서에 관계없이 최소한 물리적으로는 거의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부가 남편 중심으로 방을 쓰는지 남편이 아내들의 방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생활하는지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만 방이 여덟 아홉개쯤 되는 집이 많은 것으로 보아 대략 남편 한 사람이 아내 서넛을 두는 가정이 다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가옥 구조 못지 않게 울타리가 쳐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담장은 판자가 대부분이었지만 드물게 벽돌을 쌓아 만든 것도 있다.

판자든 벽돌이든 담장은 쳐놓은 지 얼마 안돼 보였다.

이 곳의 일부다처 몰몬들 사이에 담 치기가 어쩌면 비교적 최근 자리잡은 풍속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울타리 너머로는 18~19세기 식민지 시절 미국의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고풍스런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이 특히 눈에 자주 띄었다.

여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뒤로 넘겨 딴 머리를 하고 있다. 설핏 봐서는 아미시(Amish) 사람들과 구분하기 힘든 복장들이다.

한 남자의 아내들로 보이는 여성들이 함께 이웃을 방문해 애기를 나누는 모습도 간혹 눈에 띄었다. 어른들과 비슷한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 아이들이 엄마들의 뒤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두어 시간 가량 동네를 훑고 다녔지만 혼자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이웃 집 방문이 아니라면 몇몇이 무리를 지어 자동차를 이용해 함께 움직였다. 차 속에는 거의 예외없이 여자의 숫자가 더 많았다. 젊은 층 가운데는 나와 눈을 맞추며 내 행동거지를 유심히 살피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시안이어서 더욱 눈에 띄는 틈입자를 경계하는 한편 얼마간은 호기심도 있는 눈치들이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내가 가까이 가면 먼저 얼굴을 돌려 시선을 피하고 집안으로 도망치듯 발걸음을 분주히 옮긴다.

생김새나 얼굴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느낌 만으로라면 거의 한결같이 눈빛이 선량했다.

일부다처 몰몬들로부터 공격 혹은 봉변을 우려했던 건 순전히 기우였다. 반대로 내가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으로는 그들의 얼굴과 행동거지에서 변태 패륜 퇴폐 음탕 등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예상과는 달리 몇몇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겁먹고 움츠러든 사람들의 그 것이었다.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부리나케 집으로 도망쳤다. 낯선 사람이 접근할 경우 재빠르게 피해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듯 아이는 반사적으로 집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좀체 얘기를 걸어볼 만한 기회를 잡지 못한 채 동네를 배회하는데 멀리서 다리가 불편한 노인 한 사람이 걸어왔다. 켄트 할아버지였다. 켄트는 성을 밝히길 꺼려했는데 최근 솔트 레이크시에서 이 곳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켄트는 일부다처제를 배척하는 몰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동네에 일부다처 몰몬이 다수지만 드물게 자신과 같은 일반 몰몬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왜 일부다처 몰몬 동네로 이사했냐는 물음에 그는 "바로 그 것이 내가 이 곳에 있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일부다처 몰몬들을 '교화' 시켜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일부다처 외에도 이 곳의 몰몬들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지만 낱낱이 문제들을 거론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앤디 쿡은 켄트와는 정반대로 자신들이야말로 "좀 더 나은 가정 꾸리고 옳은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앤디는 일부다처제 몰몬으로 나이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짐작됐다.

앤디를 만난 건 힐데일의 유일한 주유소이자 편의점인 보더스 스토어에서였다.

일부다처 몰몬들과 얘기 한마디 제대로 못 나눠보고 마을을 떠나기에 앞서 들른 가게였다. 점원 일을 하는 앤디가 일부다처 몰몬은 아닐 것이라고 지레짐작 "마을 사람들이 말 좀 붙이려면 왜 다 도망가는지 모르겠다.

조금 이상한 사람들 아니냐"는 식으로 그에게 말을 건냈다. 앤디는 "마을 사람들은 외부인들의 방문을 굉장히 당황스러워 한다"고 답했다.

일부다처제 몰몬들에 대해 은근히 못마땅하다는 투로 물었는데 앤디의 답변은 그 사람들을 옹호하는 듯 했다. 순간 "이 사람이 일반 몰몬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일부다처 몰몬인지 여부를 물었다. 앤디는 표정하나 변함없이 자신은 일부다처 몰몬이라며 일부다처를 근간으로 하는 삶의 방식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속내를 모르고 일부다처제 몰몬들에 삐딱한 질문을 계속했다가는 서로 크게 얼굴을 붉힐 뻔 했다.

앤디와 켄트 두 사람의 확연한 입장 차는 힐데일에 드리워진 팽팽한 긴장의 한 자락에 불과하다. 일부다처 몰몬들이 몰려 사는 힐데일에 쏟아지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차가움 이상이다.

지난해 '교주' 격인 워렌 제프스가 미성년 성학대 등의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뒤 긴장감은 날로 확산되고 있다.

정중동의 긴박감 때문인지 내겐 마을 뒷편에 자리잡은 이 곳 유일의 일부다처 몰몬 교회가 유달리 무겁고 어둡게 느껴졌다.

전면과 옆면의 길이가 각각 80~90야드쯤은 돼 보이는 초대형 정방형 이층 건물인 이 교회는 유사시 일부다처 몰몬들의 피난처로 사용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일부다처제의 불법성 문제 등으로 연방 혹은 주 당국과 대규모 충돌이 있다면 이 교회는 순식간에 농성장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상상이 미쳤다.

이 건물은 큰 규모에 걸맞게 종심도 길어 내부에 충분한 식량의 저장과 중첩 방벽의 설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일부다처 몰몬들이 과거 자신들에 닥친 불행의 재연을 우려해 이런 특이한 형태의 교회 건물을 지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공동체를 지키려는 열의 만큼 바깥 사람들과 조화에도 노력을 기울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부, 일부다처 사실상 방조

미국내 일부다처 몰몬의 숫자는 5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체 몰몬 550만명 가운데 약 1%에 불과하다. 일부다처 몰몬의 집단 거주지로는 유타주의 힐데일과 애리조나주 콜로라도 시티가 유명하다.

한 동네처럼 붙어있는 이 두 마을에만 약 1만명의 일부다처 몰몬이 있다.

힐데일은 과거 몰몬교의 주요 지도자중 한 사람인 브리검 영이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부다처 몰몬이 유타주와 애리조나주의 경계에 자리를 잡은 것은 양쪽 주정부의 단속을 피하기 쉬운 점도 한몫을 했다.

다시말해 일부다처 등의 불법성을 문제삼아 애리조나주가 공권력을 행사하면 유타주로 반대로 유타주가 경찰력을 동원하면 애리조나주로 가볍게 피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 말일성도교회(LDS)로 분류하는 주류 몰몬교는 19세기 후반 공식적으로 일부다처를 포기했다.

그러나 원리주의 몰몬(FLDS)들은 이에 반발 자신들이 몰몬교의 적자임을 내세우며 대다수가 힐데일 콜로라도 시티와 같은 오지로 근거지를 옮겼다.

원리주의 몰몬의 핵심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일부다처는 미국에서는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 사법처리는 지지부진으로 사실상 방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50년대 초반 애리조나 주정부가 대대적인 단속 체포 작전을 펼친적도 있지만 일부다처 공동체를 해체시키지 못했다. 무엇보다 일부다처제가 종교적 신념과 강하게 결합된 탓이 크다.

일부다처 몰몬들은 미국내 종교적 소수자들 가운데서도 특히 폐쇄적이다.

자신들의 공동체 외에 바깥 사람들에게 그다지 위협적이 않은 것은 이런 폐쇄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그러나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 둘씩 문제가 외부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젊은 남성들이 배우자를 구하기 힘들다는 점과 일종의 족내혼으로 인해 기형아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둘 다 일부다처제에 따른 직접적인 부작용으로 FLDS의 미래가 걸린 문제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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