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에세이] 다비드의 역작 ‘마라의 죽음’
마라를 살해하기 위해 파리로 올라간 샬롯 코르데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서 브루투스가 시저를 살해한 방식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거사를 하려 했다.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마라가 집무실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보통 때에는 자택에 있는 욕조에서 피부병 치료를 받으면서 국사를 결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한 호텔에 방을 잡은 후 초록색 칼집에 든 칼날이 6인치가 되는 식칼을 구입했다. 이 칼을 자신의 코르셋 안에 숨겼다. 그 다음 자신이 마라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법과 평화의 친구, 프랑스 시민에게’란 글을 적었다. 그의 집을 찾아 들어갔지만 마라의 동거녀는 “마라 씨는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라고 차갑게 말하면서 그녀를 즉시 돌려보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서 단념했을 것이다. 그러나 샬롯은 초지를 굽히지 않고 그날 저녁에 다시 방문했다. 친구를 위한 탄원서를 지참했으며 마라에게 켄 지역에서 그에게 모반해서 군대를 일으켜 파리로 진군하려는 무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마라는 그녀를 욕실로 맞아 들였다.욕실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라의 질문에 따라 샬롯은 반역자들의 이름을 거명했다. “좋았어. 내가 곧 이들을 파리에 있는 단두대로 보내 사형시키지.” 이 말을 들을 때 샬롯의 피는 거꾸로 솟았다. 그녀는 재빨리 식칼을 코르셋에서 꺼내어 마라의 가슴을 향해 힘차게 찔렀다. 칼날은 폐를 지나 대동맥을 갈랐다. 칼을 빼니 선혈이 콸콸 솟아나왔다. 그는 ‘살려줘, 친구여, 살려줘.’라고 외치더니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뿜어 나온 피는 금세 욕조를 붉게 물들였다. 샬롯은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 서 있었다.
샬롯은 세 번이나 재판장을 포함한 혁명 재판소의 원로 재판관들의 심문을 받았다. 그들의 관심은 그녀의 행동이 지롱댕 당의 모함이거나 그들의 사주를 받았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시종 일관 범행은 자신만의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사를 성공시킨 후 나흘 만에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올랐다.
마라가 죽은 다음 날, 프랑스 의회는 당시 유명했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에게 장의위원으로 임명하면서 마라의 죽음을 그려 후세에 남기라고 요청했다. 다비드는 미술가였지만 자코뱅 당을 지지하는 열성 당원이었으며 마라에게는 혁명 동지도 되었다. 공포 통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루이 16세의 처형을 지지했으며 약 3백 명의 처형 문서에도 서명했다.
그는 암살 전날 마라를 방문했기 때문에 욕조의 구조, 욕실에 비치된 초록색 깔개, 머리에 두른 긴 수건, 펜과 손에 든 문서 등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피살된 지 하루가 지났으면 시체 경직으로 인해 사지나 얼굴 근육이 뒤틀렸을 터인데 마라의 시신은 마치 잠든 젊은 사람같이 평화롭다. 다비드가 그의 죽음을 이상화시킨 것이다. 광선이 시체를 비추어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것 같고 얼굴 표정이나 실제보다 길게 늘어지게 그린 오른 손의 모습은 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의 모습인 바티칸에 안치된 조각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왼 손에는 샬롯이 제출한 탄원서가 들려있고 오른 손에는 깃털이 달린 펜이 주어져 있다. 암살 때 사용된 칼은 바닥에 놓여있다. 시신 어느 곳에도 피부병의 흔적은 전혀 없다. 다비드는 마라를 혁명의 순교자로 만든 셈이다. 그림은 빨리 완성되어 두 달 안에 의회에 제출되었다.
후세에 이 그림에 영향을 받아 에드바르트 뭉크는 같은 제목(‘마라의 죽음’ 1907)으로 그림을 그렸다. 금발의 나체 여인이 전면을 향해 서 있고 뒤에 놓인 침대는 피로 물들어 있는데 역시 나신의 남자가 누워있다. 마라가 욕실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에 그가 나체인 점은 이해가 가지만 암살자 코르데가 나신으로 서 있다는 점은 사실과 다르다. 이 화가가 치정살인이나 근친상간의 복수와 같은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지적이고 미모인 여성이 세인들의 예상 밖으로 암살자가 되었기 때문인지 당시 많은 추측이 떠돌았다. 지금 세상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 자코뱅 당의 지도자들은 그녀가 단독범이 아니라 남자의 사주를 받았으리라고 생각해서 사형 직후 그녀의 머리가 잘려나간 시신을 검시하게 했다. 그녀는 처녀막을 지닌 여성으로 판명되었다. 여러 학자들은 그녀가 어떤 형태의 정신병 환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가 정치적 신조로 무장된 확신범이라는 사실 말고는 정신 질환으로 몰고 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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