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선박 2척 명명식 앞두고 공기 못 맞춰서 쩔쩔매기도···'바다가 내 무덤이다 하는 각오로 매일 일만 했어요'
그 어두운 밤에 더욱이 차 안에 앉은 채 빠졌으니 경황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순간을 극복하고 차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상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일러스트로 본 선박 건조 과정
"그 순간 운전석보다는 뒤쪽이 더 넓으니까 움직이는 건 뒤가 낫겠다 생각하고 뒤쪽으로 재빨리 움직이면서 그 짧은 순간에 생각을 하는 거야. 나가야 되겠는데 만약 문을 열면 순식간에 물이 확 들어올 거 아니에요?
그러면 문도 다 못 열고 죽는단 말이야. 수압 때문에 안 열려요. 그러고 물이 들어오니 질식해서 죽고. 그래가지고 어떻게 판단을 했느냐 일단 사력을 다해 내 등으로 차문을 밀어보고 수압보다 내 등판 힘이 더 세면 확 밀고 나간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젊었을 때 쌀가마니도 두 개 세 개씩 졌으니까 하하항."
그러면 등판으로 문을 밀쳐내고 나오신 겁니까?
"차문에 등을 착 대니까 아니야. 대번에 어림없다는 걸 알겠어. 벌써 감각이 달라요. 씨름할 때 딱 잡아보면 나보다 센지 약한지 해보지 않아도 알거든? 똑같아요. 그래가지고 재빨리 그 다음에 생각한 게 창문이야.
좌우간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였는지 몰라. 창문을 요렇게(빈틈이 생기도록) 해서 물이 조금씩 들어오게 내렸어요. 한꺼번에 확 들어오면 감당을 못하겠고 위험하니까. 그래가지고 물이 목까지 차는 순간 차 안에도 물이 꽉 찼으니까 동시에 창문을 확 내리고 바로 싹 빠져나왔지요." 어쨌든 그런 사고가 있은 후에도 정 회장의 새벽 순시는 매번 계속됐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중단하면 앞으로 수주를 어떻게 하고 건조를 어떻게 할 수 있어. 회장이 죽다 살았는데도 또 돌아다닌다 정 아무개는 물에 빠져도 물귀신이 안 된다 그렇게 소문이 돌아야 전 직원들이 명을 걸고 덤벼들 거 아니야? 내가 월급을 많이 받아간다 적게 받아간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려운 여건이지만 마음만 합치면 뭐든지 해낼 수 있다 그런 공감대가 아주 중요했어요. 아마 내가 그때만큼 막걸리를 많이 마신 시절이 없었을 거야. 난 원래 술을 못하는 편이거든?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일이 잘 안 되고 꼬이면 내 입으로 '노가다'라고 얘기해가면서 회식자리 만들라고 했어."
마침내 현대조선소가 공식적으로 조선소로 공인을 받게 되는 명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를 건조하지 않은 조선소는 조선소가 아니다. 그래서 현대조선도 사실 이때까지 준공식을 하지 않았다. 정 회장만의 유별난 고집이 있어서가 아니라 배를 건조하지 않고는 조선소로 명함을 박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국내 최대의 그룹으로 성장했던 지난날의 현대그룹 계열사 중에 기공식은 있었어도 준공식을 했던 회사는 현대조선을 제외하고는 없었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전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준공식? 나는 안 해. 사장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자축연을 열고 준공식을 했으면 모를까 나는 안 했어. 현대중공업(현대조선)도 1호선 명명식을 하고 진수식을 해야 조선회사로 공인을 받는다구 하기 땜에 6월 28일 그날 준공식이 된 거예요. 이런 얘기 처음 듣지? 하하항. 기공식만 하면 됐지 준공식이 왜 필요해? 회사 사옥을 짓는 거라면 모르지만 나는 기공식을 하는 그날부터 이미 본 사업에 들어갔어. 공장 다 지어놓고 사업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준공식이 필요할 게 뭐야 하하항."
명명식이 거행돼야 현대조선소가 비로소 세계 선박협회에 이름이 오르고 사실상 행세를 할 수 있었다고 하니 명명식 행사는 대단했겠습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 없지. 대통령 내외분이 다 내려오시고 장관들은 물론이고 외교사절들하고 선주까지 참석하는 행사니까 말이 명명식이지 울산 전체가 축제야. 그때 명명식 행사는 김형벽 사장이 잘 알거야. 행사 준비를 했으니까. 만나서 직접 들어봐요. 그눔 자식들이 대통령을 놀라게 해가지고 잽혀가기도 하고 별일 다 있었으니까.
행사를 하면서 잡혀갔다는 말씀입니까?
"행사를 코앞에 두고서 그랬지만 시원찮은 것들이 낭패를 당하게 했지 뭐야. 김영주 회장이나 이정일 사장도 알 거야. 만나봐요."
김형벽 전 회장은 당시 부장으로 명명식 행사를 지휘했지만 정 회장이 얘기한 것처럼 축제라고 느낄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인은 공기에 쫓겨 자살이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행사 날짜는 박 대통령이 참석하시기 때문에 미리 정해놓고 초청장을 보내지 않습니까. 선주들한테도 미리 알리고요. 그런데 2호선이 사실 완공이 덜 됐단 말입니다. 그러니 명명식 날짜는 받아놨고 대통령께서 직접 오셔서 명명식을 한다고는 그러지 짐작이 되겠지만 소위 건설 현장에서 용접하던 사람 배선하던 사람 뭐 그런 사람들 끌어 모아서 배를 만들기 시작했으니 숙련이 돼야 얼마나 됐겠어요. 솔직히 급해지니까 블록 하나 붙이는 것도 제대로 손발이 안 맞아요. 정말 죽겠더라고. 만약에 2호선이 제대로 진수가 안 되면 나는 자살이라도 하고 없어져야 되겠다 그런 비장한 각오가 되는 겁니다."
스틸 커팅을 자동화로 한 것도 아닐 테고 회장님은 진척 정도를 모르고 계셨습니까?
"회장님한테 일일이 보고를 못 드리지요. 언제까지 해! 이걸로 끝이니까요. 누가 나서도 2호선은 도저히 진수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거기다가 스코 사장이 절대 안 된다 이겁니다. 원칙적인 사람이니까 공정으로 봐서는 절대 진수식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억지로 고집이냐 이거죠. 그렇다고 대통령이 오시는데 사장 말대로 접을 수 있습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대통령이 온다고요!' 만날 이러면서 싸우는 겁니다. 어차피 스코 사장은 2척이 완공되면 떠날 사람이고 회장님이나 우리는 명명식 못하면 그땐 어찌 되겠어요. 그래서 검수를 할 때 설계상으로 크게 문제가 없는 건 작업에서 좀 뺐다가 진수식 끝나고 보완하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시간 때문에 도저히 안 되니까요. 그런데 또 스코 사장이 제동을 걸어요. 그래가지고 박재면 부장 전갑원 부장까지 나서서 싸우는 거예요. 심지어 전 부장이 김영주 회장님한테 그랬다고요.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김 회장님도 방법이 있다니까 전 부장을 믿고 쳐다보시는 겁니다.
'강행군을 하든지 스코 사장을 돌려보내 버리든가 둘 중에 하납니다.'이럴 정도로 긴박하고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어요."
결론은 어떻게 내려졌습니까.
"김 회장님도 상황을 아시니까 행사에 차질이 없는 방향으로 하라고 그러셨지요. 그러면서 어떤 얘기까지 나왔느냐 하면 만약 스코 사장이 끝까지 진수식을 못한다고 막으면 '내가 점잖게 은밀한 곳으로 유인하지' 이랬을 정도예요. 감금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분이 굉장히 유순한 성품인데 그런 정도까지 생각하셨으면 정말 그때 상황은 절박했다는 거죠."
그러면 스코 사장 없이 명명식 행사를 한 겁니까?
"김 회장님이 직접 설득을 하셨는지 보고를 받은 명예회장님이 잔소리 말라고 하셨는지 스코 사장이 수용을 했어요. 정말 억지로 진수를 시켰고 예정대로 박 대통령 내외분 모시고 명명식을 가까스로 했지요. "
행사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을 놀라게 해서 홍역을 치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이정일 전 미포조선 회장이 아이디어도 냈고 현장에도 있었으니까 이 회장이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정일)잊혀지지 않는 일이지요. (웃으며)그때가 명명식 하는 날은 아니었을 거예요. 진수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는 건 맞는데. 박 대통령이 관심도 많으셨지만 초유의 26만t급 유조선을 진수시킨다고 하니까 걱정도 되고 궁금하셨던지 예고 없이 내려오셨어요. 그래가지고 대통령께서 배 안쪽 밑바닥을 한번 보시겠다는 겁니다. 사실 큰 배 밑바닥은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나 궁금해 합니다. 근데 대통령이 배 안에 들어가면 경호 절차가 아주 철저하고 복잡해져요. 작업자들 전부 체크하고 조사하고. 그래서 작업자들은 아예 배 안에 들어가면 못 나오게 해놓고 중역들은 바깥에서 도열해 있고 회장님만 수행을 하시는 거죠. 그런데 사건이 생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