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함께 이끌고 있는 종합건강식품업체 영신 하이비. 왼쪽부터 손자 최태민씨, 창업자 최치복 옹,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아들 최훈석 회장.
연간 2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100에이커 규모의 애리조나 양봉농장에서는 연간 600만 파운드를 생산한다. 미서부 지역 생산량 1위다. 시카고에 4만5000스퀘어피트 애리조나에 3만스퀘어피트 규모의 가공공장이 있다.
한인 시장은 물론 OEM 방식으로 코스코 등 주류 시장에 납품하며 제과 및 제빵업계에 꿀과 꿀가루 등을 공급하고 있다.
양봉농장으로 출발해 지금의 종합 건강식품업체로 발돋음한데는 30년동안 3대가 이어온 전통과 정통이 바탕에 깔려있다.
영신 하이비는 1977년 최치복(90) 전 회장이 영신양봉원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최 옹은 6.25 전쟁 고아들을 위해 영신보육원을 세우고 그들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양봉에 뛰어들었다. 오직 양봉만을 위해 반평생을 살았다.
최 옹은 아들에게 "모든 일에서 기초를 확실히 해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쳤다. "어떤 경우에도 배우는 자세를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신뢰할 수 있는 제품 생산에 주력하라"고 늘 가르쳤다.
아들 최훈석(46) 회장은 어려서부터 양봉 일을 해야했다. 방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부모를 도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온갖 고생을 겪었다. 그래서 양봉이 싫었다.
시카고 공대에서 우주항공공학을 전공하고 보잉사에서 7년동안 근무했다. 하지만 부친은 70세가 넘어도 양봉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마음을 바꿨다. 부친이 땀흘려 일궈놓은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91년 최 회장이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가내 수공업 같았던 영신 하이비는 커나가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시대에 맞는 '하이비(Hibee)'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다. 소량 생산해 직접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카고 본사 LA와 뉴욕 메릴랜드 서울 등 4곳에 지사를 설립했다.
최 회장은 아들에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오직 땀 흘려 얻어지는 것이 진정한 가치를 알게해준다"고 말한다. 또한 "더불어 사는 마음으로 나누고 이를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듀폴 대학에서 비즈니스 마케팅을 전공하고 있는 손자 최태민(21)씨에게 양봉농장과 공장은 놀이터였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양봉농장과 공장을 찾아다니며 생산 과정 등을 지켜봤다.
내년 6월 졸업하면 마케팅과 R&D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주류 기업에 취업할 계획이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태민씨는 특히 R&D 연구분야에 관심이 많다.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산 경험을 어떻게 제품에 접목 개발할 것인가가 과제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경영 및 기업 방침을 어떻게 2세를 위한 차세대 계획에 맞춰 새롭게 만들어가나 고민이다.
태민씨는 아직도 청년과 같은 열정으로 애리조나 꿀농장과 공장을 찾아 좋은 꿀과 최상의 생로얄젤리 원액을 채취하고 관리하는 노하우를 몸소 보여주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그 정성과 열정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영신 하이비를 전통있는 가업으로 키워야겠다고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