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A 레이커스로 복귀한 데릭 피셔(32)는 안암에 걸린 어린 딸을 키우고 있다. 딸이 생후 10개월이었던 지난 5월7일 피셔는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 시리즈 2차전에 2쿼터까지 결장했다. 딸이 긴급 수술을 받는 날이었고 피셔는 수술을 지켜본 후 3쿼터가 되어서야 경기장에 모습을 보였다. 유타 재즈 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피셔는 이날 경기에서 중요한 순간에 3점포를 성공시켜 재즈의 승리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영화 '그 놈 목소리' 포스터
피셔는 시즌이 끝난 후 재즈 구단에 방출을 요청했다. "딸을 돌볼 수 있는 도시로 가기 위해서"였다. 안암 전문의가 있는 대도시로 가기 위해 그는 3년 2100만 달러의 계약을 포기했다. 피셔가 꼭 필요했던 재즈 구단의 래리 밀러 구단주는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두 말 없이 계약 해지를 허용했다. 피셔는 "농구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는 안암 전문의가 많은 LA에 정착하기로 했다. LA 행을 결정(LA 레이커스와 계약)하면서 그가 손해본 액수는 약 7백만 달러였다. 자식의 생명은 7백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기자는 얼마 전 '그 놈의 목소리(감독 박진표)'라는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놈의 목소리'는 지난 1991년 유괴 살해된 고 이형호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방송사 뉴스 앵커였던 형호군의 부친은 아들이 유괴되자 방송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또한 유괴범이 요구했던 거액의 돈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주려고 했다. 유괴범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달래고 부탁하고 울기도 했던 형호군의 부친은 결국 차가운 주검이 된 아들을 발견한 후 오열했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그 놈'을 잡아야 한다는 것보다는 생명을 향한 부모의 몸부림치기와 절규였다. 어떤 관객이 '형호의 엄마(김남주 분)가 형호를 밤늦은 시간에 놀이터로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분노를 했다면 이 영화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한국인 23명 중 2명이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 이 사건에 주력하는 것은 국력 낭비라는 소리 기독교 선교에 대한 비난과 방어 등으로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피랍자 가족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 가족들은 '논란'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납치된 가족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생명의 갈림길에서는 이성적 판단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들이 내 자녀였고 내 형제였고 내 친척이었다면 그렇게 한가하게 인터넷 댓글이나 올리고 있을 수 있었을까.
한국 정부나 미국 정부의 각료들도 자신의 자녀가 붙잡혔다면 그렇게 이성의 판단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아마 형호군의 아버지처럼 '미친 듯이' 협상에 임했을 것이다. '그 놈'을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존댓말을 써가며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러웠던 형호군의 아버지처럼 협상을 했을 것이다. 또한 데릭 피셔처럼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서의 예수가 안식일에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자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며 비난했다. 그런데 예수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안식일에 네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지면 너는 붙잡아 끌어 내지 않겠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지금은 내가 옳다 네가 옳다고 토론할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생명을 구하는 일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뜻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