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푸른 밤'을 지새웠다. 톡(Tok)시로 이어지는 알래스카 2번 도로(A2)상의 한 전망대 주차공간에서였다. 알래스카에서의 첫 밤이기도 했다.
앵커리지 남쪽 해안. 눈을 이고 있는 산 봉우리들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태평양이 알래스카만의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알래스카의 여름은 태양이 지배하는 계절이다. 대략 북위 66도 이상의 북극권(Arctic Circle)에서는 위도의 높낮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름 평균 3개월 가량은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다.
위도가 이보다 조금 낮더라도 사실상 칠흑의 밤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자정을 전후한 시간 푸른 빛이 천지를 감싼다.
어둠이 물러간 극지의 이런 시공간을 사람들을 '백야'(White night)라 부른다. 하지만 내눈엔 그건 분명히 푸른 밤이었다.
동트기 직전 새벽녘의 여명과 똑 같은 푸르스름한 색이다. 우주에서 본 지구를 가리켜 푸른 행성(Blue Planet)이라고 하는데 그 푸른 빛이 바로 이 빛과 똑같을 것 같다.
세상천지의 만물은 푸른 밤이면 스스로들 거듭 난다. 산 그림자를 찾을 수 없지만 산은 그 자체로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호수는 그 물빛이 변해버리므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적어도 푸른 밤이 지배하는 시간 만큼은 모든 물들이 평등해진다.
지난 네 계절에 걸친 유랑생활 동안 수없이 접었다 펼쳤다를 반복한 미국 지도를 꺼내 본다. 손때 가득한 한장 짜리 지도는 여기저기가 문드러져 있다.
지도의 알래스카 부분은 그래도 말짱한 편이다. 48개주의 본토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바람에 지도의 한 귀퉁이 별도의 공간에 그려져 있는 탓이다.
푸른 빛이라고는 하지만 지도에 쓰여진 깨알 크기의 도시 이름들을 읽어내는데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차 안 구석에 나뒹굴고 있는 신문 쪼가리를 주워 들었다. 얼마 전부터 노안이 시작됐지만 역시 그런대로 읽을 만하다.
알래스카에서 첫 밤을 톡(Tok)시도 못 가서 난 것은 계산 착오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장 짜리 미국 지도 속의 알래스카를 찬찬히 살피지 않고 얼렁뚱땅 훑어본 무성의 탓이었다.
톡은 알래스카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남서쪽으로는 앵커리지가 북서쪽으로는 페어뱅스가 있다. 앵커리지와 페어뱅스는 알래스카의 양대 도시다.
지도 속의 알래스카는 갓난아이의 손바닥 보다 작았다. 별도로 표시된 알래스카와 미국 본토의 축적이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한마디로 알래스카가 그처럼 넓은 땅 인줄은 미처 몰랐다.
이튿날 톡(Tok)시에 들러 확인해 보니 알래스카의 면적이 텍사스의 2배가 훨씬 넘는다. 남한 땅의 17배 알래스카를 하나의 국가로 친다면 멕시코 등에 이어 세계 18위권에 해당하는 넓이로 준 대륙급이다.
지도를 슬쩍 훑어만 보고는 톡에서 앵커리지까지는 3시간 안팎이면 족하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지도에서는 거기가 거기처럼 보였던 두 도시는 실제로 차로는 6시간 가량이 걸리는 간단치 않은 거리였다.
백야의 푸른 빛으로 기존의 시공간 감각이 무뎌진데다 결과적으로 지도까지 오독하다 보니 알래스카에서 첫 밤은 세상과 까마득히 떨어진 어떤 곳에 와있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타임머신에 올라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영원히 녹지 않을 듯 머리에 두텁게 눈을 이고 있는 산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타이가(Taiga)의 소나무들.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끝끝내 밤이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는 까닭인지 가끔씩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
새들 뿐만 아니라 나의 송과선 또한 여명의 광 신호로 자극을 받은 것인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알래스카의 백야는 어쩌면 다소간 퇴화했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생체 시계를 초침까지 그대로 살려 놓는 마력을 가진 듯 했다.
때깍 때깍 움직이기 시작한 생체 시계는 단순히 잠들기만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다. 생체 시계는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내 유전자를 일깨웠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 처음 본 알래스카가 그리 낯설지 않았던 것은 내 유전자에 박혀있던 '시원의 추억'을 바로 이 땅이 불러낸 때문인 것 같았다. 생소하기 짝이 없어야 할 동토의 땅 알래스카에서 나는 그다지 이국의 정취를 못 느꼈다. 오히려 알 듯 모를 듯 한 친근감마저 들었다.
반도체 칩 속에 담긴 정보처럼 유전자에는 굵직한 '과거의 기억' 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중 빙하시대처럼 인류의 최근 기억은 특히 퇴화나 손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로 보관돼 있을 터이다.
사람이 뱀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를 무서워하거나 징그러워 하는 것 또한 유전자에 녹아든 정보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진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포유류의 조상은 오늘날 쥐같이 생긴 설치류였다는 것인데 공룡 시대를 살던 이들이 파충류만 보면 잡아 먹힐까 봐 기겁을 했던 게 자연스레 유전자에 각인됐다는 것이다.
현생 인류는 대략 10만년 전 탄생했다. 이들에게 닥친 가장 가혹한 시련은 아마도 빙하시대를 불러온 혹독한 추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수 인류 진화의 방향 또한 추위에 적응하는 쪽으로 맞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빙하시대의 생존 본능이 사람들의 유전자에 진하게 새겨져 있다고 추정할만한 근거다.
하루가 다르게 지구가 따뜻해지는 온난화 시대에 특히 알래스카는 단순한 변방이 아니다. 인류 시원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빙하기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중한 고향과 같은 공간이다.
알래스카가 사람들의 '초심'을 불러내는 것은 그래서 이상할 게 없다. 그 곳에 가면 사람들은 절로 자연의 일부가 된다. 하늘은 아버지요 산과 들은 어머니다.
알래스카는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보살핌'이란 개념이 얼마나 허위적인지를 침묵으로 말한다.
자연이 사람에 안기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그래서는 진정한 감동이란 없다. 알래스카는 사람이 자연의 품에 깃들 때 또 자연에 순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환희를 가져다 준다.
원초의 땅 알래스카는 '불의 키스'처럼 내 몸을 달궜다. 한번 빠져들면 좀체 벗어날 수 없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의 땅덩어리라는 느낌이 나만의 것일까.
땅은 넓고, 길은 드문 드문
알래스카는 넓은 땅덩어리에 비해 사람이 아주 적다. 50개 주 가운데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은 탓에 인구 밀도가 평방 마일당 1명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미국내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뉴저지(평방 마일 당 1000명)는 말할 것도 없고 인구가 가장 적은 와이오밍과 비교할때도 1/5에 불과한 수치다.
인적을 찾기 힘들 만큼 승차 유랑인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길가와 숲 속에 빈터가 널려 있다. 특히 여름철은 어디든 차만 댔다 하면 그 자리가 별장 자리 일 정도로 풍광이 뛰어 나다.
사람이 드문 드문 흩어져 사는 까닭에 길도 발달돼 있지 않다. 간선 도로는 남동부 일부 지역만을 연결할 뿐이다.
알래스카의 기간 도로인 A1 A2 A3 이렇게 3개의 도로만 달려봐도 차로 돌아볼 수 있는 알래스카의 절반 이상 훑어보는 셈이다. A1 A2 A3 는 삼각형 모양으로 연결돼 있다. 알래스카의 관문인 톡(Tok)에서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Anchorage)로 가는 도로가 A1이다. 상당히 험난한 산길을 통과한다. 알래스카의 산들의 보기에 가장 좋은 도로다.
A2는 톡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페어뱅스(Fairbanks)를 잇는 길이다. 주변에 비교적 평평한 분지들이 발달돼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A3는 앵커리지와 페어뱅스를 연결하는 길로 알래스카의 내륙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맥킨리 봉이 이 도로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과 남쪽 태평양 해안을 따라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섬들은 비행기 혹은 배편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
알래스카는 전역의 풍광이 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으로는 글레이시어 베이(Glacier Bay) 북극의 관문(Gates of Arctic) 등 8개가 있다. 그러나 이중 디날리(Denali) 랭겔-세인트 일리아스(Wrangell-St. Elias) 등 2개만이 온전히 차로 방문할 수 있다. 나머지는 오로지 배나 비행기로만 찾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