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만 닿아도 순식간에 물기가 확 퍼질 만큼 섬세하지만 신방에 들은 신랑 신부를 훔쳐보기 위해서는 손가락에 침을 묻혀도 뚫기가 쉽지 않은 창호지(한지). 어디 그뿐이던가. 겹겹이 붙이면 화살도 관통하지 못할 만큼 강해지는 창호지를 이용해 우리 조상들은 장수를 위한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지 공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안순옥씨는 한지를 이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든다.
한지 공예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멋이 담겨 있다. 플라스틱과 양은이 개발되기 훨씬 전이었건만 우리 여인들은 반지고리며 보석함을 곱게도 만들어 딸자식 시집 보낼 때 싸주곤 했다.
같은 시간 사랑방에서 남정네들이 새끼를 꼬아 만들었던 바구니가 힘 좋은 머슴처럼 질박한 멋을 풍기는 반면 한지 공예 작품들은 화려하고 예쁘장한 것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아씨의 모습 같다.
색색의 종이를 붙여 만든 한지 공예품은 처마 밑 단청 같기도 하고 명절날 입었던 색동 저고리의 소매 같기도 하다.
안순옥(62)씨는 14여 년의 세월 동안 한지를 오리고 붙이며 살아왔다. 자잘한 소품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한지 공예는 어느덧 대형 장식장을 제작하게 될 만큼 일취월장했다.
하얀 속지에 풀을 바르고 신비로운 문양을 뜨며 알록달록한 색지를 오려 붙이면서 지내온 세월 동안 그녀는 한 순간도 우리 것에 대한 오롯한 사랑을 놓아 본 일이 없다. 한지 공예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그녀는 5년 전 한국 문화원에서 몇몇 동료 작가들과 함께 합동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지난 14년 동안 그녀가 밤을 새며 만들었던 작품들에는 전통미가 살아 숨쉰다. 장롱 장식장은 그 자태가 연지 곤지 찍고 족두리 올린 신부처럼 곱디 곱다. 나무보다 탄탄한 팔각형 과반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는 예물 상자 받기가 황송할 정도로 예쁜 반상 그 밖에 반지고리 필통 등갓 쟁반 부채 바둑판 등 자잘한 생활 용품에 이르기까지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의 목록은 끝이 없다. 한 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예쁜 것 알아보는 여자들은 손을 떼질 못한다. 세상에 나무도 아닌 종이로 어떻게 저런 것들을 만들었을까.
하얀 속지를 속옷처럼 입힌 후 색색의 종이를 붙인 작품들은 비단 옷 입혀놓은 여인네들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띤다. 공방의 최고 장인이 만들었다 하더라도 입이 벌어질 만큼 모양새가 고운데 안순옥씨는 누구든 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것이 한지공예라며 초보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한지 공예 교실
무형 문화재 상기호씨 문하에서 수학한 한지공예가 장수경씨(74)는 한지 공예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지 공예 교실에는 10기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옛 여인들의 지혜, 풍류, 멋을 21세기에도 고스란히 되살리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그녀의 창작품만큼 아름답다.
약 15달러의 재료비로 일주일 정도면 소품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고 하니 보다 많은 이들이 이 멋진 취미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1기로부터 10기에 이르는 문하생들은 ‘한국 어머니들의 안방 문화, 심사임당 편’이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한지 공예 클래스 -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13091 Galway St. Garden Grove CA 92844. 아서원 뒤쪽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
수강료는 무료이며 재료비만 부담하면 된다. 문의, (714) 835-4878. (714) 469-5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