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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C병원 콘서트' 기획 제인 김씨…삶과 죽음 사이, 노래 한 곡 흘려요

Los Angeles

2007.08.0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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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많은 곳, 전문 음악인 모여 희망의 연주회, 암투병 아버지 그냥 보냈는데 그 한 풀려 기획
장기 입원환자와 중환자들이 많기로 유명한 USC 대학병원. 매일 수많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이 곳이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어두웠던 병원의 분위기가 마법처럼 밝게 변모하는 날이 있다.

위 사진은 지난 6월21일 실시된 연주회 모습.

위 사진은 지난 6월21일 실시된 연주회 모습.

이 날이 되면 장기 입원환자들은 물론 그 가족들과 의료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병원 사람들의 모든 걱정과 생.사의 경계가 유일하게 사라지는 날이다.

바로 제인 김(24.몬트로즈)씨가 친구들을 이끌고 병원에 오는 날이다.

김씨와 친구들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고 오케스트라 음악대학 등에서 활동중인 전문 연주가들이다. 이들은 병원 각 층의 로비를 돌며 자신들이 갈고 닦은 음악으로 '삶의 희망'을 연주한다.

거동이 힘든 중환자들이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모여들고 수술시간을 기다리던 환자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초조함이 사라진다. 병원 직원으로부터 이들이 다시 온다는 얘길 듣고 연주 시작 훨씬 전부터 자리를 잡는 환자들이 있는가 하면 의사.간호사들도 진료를 잠시 멈추고 지긋이 눈을 감는다.

음악이 병원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을 치유하는 순간이다.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등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밝고 아름다운 음악 선율로 병원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줄 때 정작 행사를 기획한 김씨는 팔짱을 끼고 청중들과 어울려 연주를 감상한다. 병원 층을 옮겨 가면서 실시하는 음악회에 자신의 피아노 연주는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김씨는 친구들의 연주를 통해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만난다.

USC 대학병원에서의 연주회는 지난 6월 처음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희망을 선사하겠다'는 의도 아래 김씨는 교회에서 연주회를 통해 기금을 모았다. 좋은 일에 음악인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참을 수락했다.

연주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1월28일 아버지 김수용(54)씨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 보냈다. 임파선 암이었다. 늘상 피로함을 호소하던 아버지 김씨는 지난해 11월 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그대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집에는 두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김씨는 "이민생활이 누구에게나 그렇듯 바쁜 생활 때문에 피로가 쌓인 줄로만 알았다"면서 "그러나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악성 암세포가 몸 안에 번진 말기 상태였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대신 생계를 책임지는 동안 아버지의 병 수발은 김씨의 몫이었다.

유별나게 음악을 사랑하고 특히 매일 저녁 딸의 피아노 연주로 하루의 모든 피로를 씻어내던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도 음악을 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투병생활 초기의 일이다.
김씨는 준비해 간 CD 중 대부분을 결국 틀지 못했다. 하루하루 눈에 띄게 상태가 악화되면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말기암 환자에게는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듣는 것 조차 감당하기 힘든 무리한 일이었다.

김씨에게 이 일은 마음속 깊은 '한'으로 남았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것도 이때 쯤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많은 중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머지않아 있을 헤어짐을 준비하면서 병동 전체를 우울함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김씨는 맹세했다. 두번 다시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들려주지 못할 음악은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김씨는 지금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감염 위험 때문에 방을 나설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병실 하나하나를 방문해 음악으로 기쁨을 안겨주고 싶다. 또 아버지와 같은 암환자들 한창 꿈을 꿀 나이에 병실 안에 갇힌 아이들에게도 음악으로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싶다.

"저도 친구들도 참 행복하게 병원을 찾고 있어요. 그럴듯한 정식 음악회는 긴장 속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면 허탈함이 더 크게 남지만 음악이 봉사가 될 때는 기쁨만 남더라구요."

하늘에 있는 김씨의 아버지는 흐뭇할 것 같다. 아쉬움과 걱정 속에 세상에 남겨둔 딸은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않고도 거창한 무대 없이도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고 더욱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하는 진짜 음악인이 됐다.

서우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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