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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와인은 소수만 맛보는 '액체 황금'

Los Angeles

2007.08.2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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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어도 살 수 없다는 캘리포니아산 명품 포도주, 소규모 와이너리서 한정된 양만 생산, 아주 비싼 것은 한병에 1만달러 호가
LA에 사는 와인 매니어 김모씨(42)는 요즘 가만 누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난다. 꿈에도 그리던, 꿈속에서도 갖고 싶던 와인 한 병을 드디어 손에 넣은 까닭이다. 그가 와인경매에 응찰, 어렵게 구한 와인은 ‘할란 이스테이트 1994년산’. 김씨는 “1500달러가 넘는 돈을 썼지만 아깝지 않다”며 “고흐 그림을 사놓고 밤새 들여다보며 기뻐하는 사람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라 했다.

와인을 즐기는 매니아들이 ‘액체황금’으로 유명한 컬트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와인을 즐기는 매니아들이 ‘액체황금’으로 유명한 컬트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할란 이스테이트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 ‘컬트 와인(Cult Wine)’ 중 하나. 컬트 와인은 미국 상류층이 아이를 낳으면 그 이름을 어떻게든 구매자 명단에 올리려 안달한다는 ‘럭셔리 업계’ 최신 블루칩이다.
명품 와인 하면 프랑스 산부터 떠올리는 우리. 대체 컬트 와인이 뭐기에 월가 투자가들로부터 ‘금보다 낫다’는 평까지 들으며 세계 와인 매니어들을 잠 못 들게 하는 걸까. 와인 경매의 남다른 세계를 살짝 엿봤다.

얼마전 LA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매니아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에서 생산되는 컬트 와인 여섯 종류를 시음하는 자리다. 디너 참가비는 1인당 500달러. 그럼에도 자리는 꽉 찼고 사람들은 9단계의 프랑스 정찬 코스 요리와 함께 말로만 듣던 와인들을 한껏 즐겼다.

몇몇 참가자들은 "컬트와인을 맛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아직 어린 와인들인데도 카리스마가 느껴지고 균형감이 남달랐다"고 평했다.

컬트 와인이란 지난 10년 사이 나파 밸리의 몇몇 와이너리에서 생산을 시작한 최상급 와인을 뜻한다.

소규모 농원에서 한정된 양만 생산한다 해서 부티크 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처럼 포도 품종 중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이용하기 때문에 컬트 캡(카베르네 소비뇽의 준말)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스크리밍 이글.할란 이스테이트.콜긴.셰이퍼 등이 최고급 와인을 잇따라 내놓자 와인 비평가들은 호들갑스러운 찬사로 이들을 맞았다.

특히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미국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그중 몇몇에 100점 만점을 주면서 순식간에 추종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여기 기름을 부은 것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이들만의 독특한 판매 시스템. 구매자 명단인 '메일링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야 구매가 가능하다. 회원의 사망.파산 등으로 결원이 생기길 기대하며 대기 중인 이들만 와이너리별로 수천 명. 개중에는 아예 리스트를 폐쇄해 버린 곳도 있다.

명품와인은 생산량의 70% 가량을 경매로 판매하고 나머지 30%로 레스토랑.소매점 납품 및 수출을 감당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시장에 풀리는 양이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장을 원하는 컬렉터는 갈수록 느는데 구할 방법은 없으니 값이 뛸 수밖에. 소량의 수출.소매점 납품 와인은 금세 동이 나고 어쩌다 경매에 등장하는 것들은 값이 출고가의 2~6배에 이른다. 빈티지(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의 수확연도)에 따라서는 한 병에 1만 달러를 호가하기도 한다. 희소성이야 말로 컬트 와인의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미국 와인 시장의 급성장도 컬트 와인 바람에 큰 몫을 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와인 경매 시장은 뉴욕. 특히 미국의 신흥 갑부들은 와인 수집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2일자 뉴욕타임스는 "요즘 미국 최고 부촌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아서턴에선 와인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이를 '가장 캘리포니아다운 범죄'라 규정했다.

와인 전문가인 데이픈 더븐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컬트 와인은 일종의 유통화폐"라며 "도둑들은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달러보다 와인을 소장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간 주류를 사고팔 수 있는 서구 사회에서 고가 와인은 오래 전부터 '액체 황금'으로 불리며 중요한 재테크 수단이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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