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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소고] 한국 오엠(OM) 선교회의 태동

Los Angeles

2007.09.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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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호 목사 로고스교회
1989년 8월 홀랜드의 드브론에서 전 세계 오엠(Operation Mobilization)국제 선교회 총회가 열렸다. 한국에 오엠지부를 설립할 것을 결정하고 나를 초대 오엠국제선교회 한국대표로 임명했다. 전 세계 리더들이 모인 자리에서 죠지버워 총재는 공개적으로 나에게 도전했다.

'네가 오엠의 리더로 일하는 동안에 내가 너에게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수 많은 상처와 문제들과 눈물 뿐이다.'

서울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을 이사장으로 한국 오엠 이사회가 구성되었다.

1990년 1월 한국오엠국제선교회(OM Korea)가 공식적으로 발족되면서 한국의 평신도 선교 사역과 단기 선교 사역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에 러브유럽과 타이완 기독정병훈련 2년 단기 선교사들이 줄을 이어 출국했다. 지금은 전 세계 50여 나라에 300여명의 장단기 사역자들이 사역하고 있다.

1991년 이스라엘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을 순방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6백50만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게 하셨다. 미주 한인 2세로서 이스라엘 오엠에 와서 사역하고 있는 형제와의 만남이 나를 새롭게 눈뜨게 했다.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고 다인종 사회에서 성장했으며 세계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자란 우리의 1.5세 2세들은 지구촌 시대에 쓰임 받게 될 재목들이 분명했다. 어디 그 뿐인가? 한국교회의 순교의 영성과 헌신을 배워 지사충성 일편단심의 신앙은 이들을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해 준비시켜 놓은 선교의 보루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오엠과의 끈질긴 협상 끝에 1994년 6월 우리 가족은 안식년 겸 미주 한인 오엠 선교회(OM Korean-American Mission)를 시작하기 위해 엘에이 패세디나로 들어오게 되었다.

오정현 강준민 김용훈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오엠캠 이사회가 구성되었고 랄프 윈터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미국 세계 선교센타(U.S Center For World Mission)에 오엠 캠 사무실을 열고 사역을 시작했다. 그 일을 위해 나는 풀러신학교에서 리더십 박사과정도 공부했다.

한국오엠과 미국오엠의 협력으로 한국의 2년 단기 사역자들이 미국에 들어와 언어연수 및 타문화 적응 훈련을 받게 되었고 풀러 신학교와 윌리암케리 대학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과 세계선교센타에 속해 있는 세계적인 선교학자들과 선교사님들을 통해 확증된 선교훈련을 경험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6백50만의 한인디아스포라는 세계 선교를 위해 쓰임 받을 선교의 남은 자들이다. 나는 오엠 선교선을 타고 전 세계 130여 나라를 순회했다. 가는 곧 마다 한인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곳에는 반드시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특징은 교회중심의 공동체이다.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회당중심인 것과 같다. 한인 이민자들은 그 곳에서 2세들을 위한 비전을 키워나가고 있다.

초대교회가 확장되어 나갈 때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을 통해 이방선교가 효과적이며 전략적으로 펼쳐져 나갔다. 이방 선교의 선두를 달리던 선교사들도 모두 이중 문화권에서 자란 디아스포라들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미주 땅에는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의 70% 이상이 살고 있다.

이들 중 80%가 어떤 모양으로든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미주에서 한인 인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LA이다. 우리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있다. 이 사명을 우리 미주 교회는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들 특히 자라나는 2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네트웍을 이루어 자원을 동력화 시켜야 산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난 20여년 동안 국제 선교팀에서 훈련시켜 왔는지 지금 왜 나를 이 광활한 미주 땅에 서있게 하시는지 그리고 한인 디아스포라의 중심지인 엘에이에서 뿌리내리며 살게 하셨는지 그 분의 섭리와 인도하심은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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