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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애를 쓰고, 태우고, 끊다

조 현 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애는 창자나 쓸개 정도의 의미로 쓰이는 고유어다. 고유어임을 강조하는 것은 애를 슬프다는 의미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애절하다는 단어가 혼동의 시작으로 보인다. 애절(哀切)에서 슬픔을 유추하는 경우가 많다. 애가 창자나 쓸개 같은 신체 내부의 기관을 의미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슬픔과 연계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레 한자의 슬플 애(哀)로 연상되는 듯하다.

애는 간장(肝腸)과 합쳐져서 애간장이라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애를 정확하게 어떤 부위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애를 쓰다, 애를 태우다, 애끓다, 애를 끊다, 애가 마르다, 애달프다, 애간장을 녹이다' 등과 같이 다양한 표현이 있다. 애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나타내는 장소이기도 하다. 애를 쓰는 것은 내 힘을 모두 기울이는 일이다. 그냥 일을 하는 것과 애를 써서 일하는 것은 다르다.

애는 본래 '창자' 등의 의미로 쓰는 것이지만 '초조한 마음속, 몹시 수고로움'의 뜻(표준국어대사전)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애를 태우거나 애를 끓이고, 녹이는 것은 초조함을 나타낸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애를 쓰는 것은 수고스러움을 나타낸다. 애는 나의 남은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옛말에서는 '애굳다'는 표현도 있었는데 이것은 '굳세고 굽히지 않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이렇게 애는 초조하고, 수고스런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 선조들은 신체 기관 중에서 가장 간절함을 보여주는 게 '애'라는 생각을 하였던 듯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표현하는 것은 애가 끊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의 진중시(陣中詩)에도 '애를 긋다'는 표현이 나온다. 끊어진다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해 볼 수도 없는 아픔이겠지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란 어떤 느낌일까? 얼마나 아플까?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노래 중에 반야월 선생이 작사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라는 곡이 있다. 노래 가사 중에는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라는 표현이 나온다. 눈앞에서 끌려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슬픔을 무엇에 비할까? 단장이라는 말은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이다. 슬픔을 표현하는 가장 아픈 표현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창자가 끊어졌다고 해서 그 아픔이 정말 다 표현되었을까? 노래 가사에는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야말로 눈에 밟히는 모습이 아닌가? 실제로 반야월 선생이 전쟁 때 딸을 잃었다고 하니 가사의 아픔이 더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아이들과 영원한 이별을 뜻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것도 강제로 이루어진 이별이라면 창자가 끊어지는 것보다 더 아프지 않을까? 어쩌면 창자가 끊어지면 그 순간 기절을 할 거고, 아무 기억도 없을 수 있다. 그러고는 생명마저도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의 갑작스런 영원한 이별은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아도 아파오는 고통이리라.

밥을 먹어도, 술을 마셔도, 노래를 들어도, 옷을 사도, 이야기를 나눠도, 사람들을 만나도 이 슬픔은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가는 곳마다, 보는 곳마다 아프게 되살아나기도 한다.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무심하게 툭 튀어나오는 기억에 내 몸 속의 장이 모두 끊어지는 듯, 다 타 버리는 듯, 끓어서 녹아내리는 듯하다.

얼마 전 미얀마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종교를 떠나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그들은 종교의 이론이나 경전의 해석은 잘 모를 것이다. 허나 그 간절함에는 가슴으로 눈물이 흐른다. 애가 탄다. 애가 녹는다. 애가 끊어진다. 나도 잠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간절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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