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고등어를 ‘국민생선’이라고 부른다. 누가 이런 별명을 처음 붙였는지 알길이 없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먹는 생선이 고등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별명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몇 주 전 한국 수퍼마켓에서 ‘안동 간고등어’ 두 손을 사서 집에서 생선구이틀에 얹어 구워 먹은 적이 있다. 생선이 구워질 때 기름이 밑으로 쭉 빠지는 고급 생선구이틀을 몇 해 전에 구입했다. 간고등어는 생고등어와 달리 마리 수를 손으로 따진다. 한 손은 작은 놈이 큰 놈 배안에 들어가 한 쌍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나는 ‘안동 간고등어’라는 상표만 믿고 샀는데 안동 간고등어구이집 원조식당에서 먹은 것과 비교하면 맛이 택도없이 뒤졌다. 미국에서 생고등어에 소금을 뿌려 간고등어로 둔갑시켜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고등어의 진맛은 소금을 기술적으로 뿌려 숙성시키는 과정에 크게 좌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1년간 한동대학에서 가르치면서 나는 몇몇 친구 교수들과 지방자치단체 특산물을 홍보하는 여러 축제들을 다녀 온 적이 있다. 대부분의 축제들은 사과, 감, 복숭아, 포도, 한우 등 그 고장의 특산물을 홍보하는 마당들이었다. 그런데 생산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상품을 홍보하는 축제들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충북 영동의 ‘영동산골 건오징어’ 축제, 강원 인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제 황태’ 축제, 그리고 경북 안동의 ‘안동 간고등어’ 축제들이다.
바다가 없는 유일한 도인 충북 영동 학산면 박계리는 충북에서 무주로 이어지는 산골짝 중에 산골짝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여기저기 오징어 말림대들이 군대 사열처럼 줄지어 들어서 있는 광경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 진다. 1989년 박계리에 건오징어 건조장이 지어 지는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정신나간 사람의 짓’이라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들여온 생오징어를 덕장 산골짜기 천연암반수에 깨끗이 씻어 영동 특유의 계곡 바람과 햇볕에 서서히 말려 이루어진 영동 건오징어는 속초, 울릉도 등 생산지 해변에서 해풍에 말려진 건오징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질이 부드럽고 쫄깃하여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도 인기리에 수출이 된다는 얘기다.
강원 인제는 겨울 철이면 황태말림장이 온 산과 들을 뒤덮고 있는 진기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황태는 생선 명태를 해풍에 말리는 북어와는 달리 산속에서 산바람에 의해 무르익은 건명태다. 전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인제황태는 인제 특유의 한파와 눈보라를 여러 날 동안 거치면서 익어가기 때문에 인제 특유의 맛을 담고 있다는 소문이다.
안동에는 지금도 ‘안동 건고등어’ 전통염장들이 여러 군데 있다. 염장은 내장을 모두 빼버린 고등어에 안팎으로 소금을 뿌려 숙성시키는 창고다. 이 염장에서 ‘건잽이’라고 불리는 특수한 방법으로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는 기술자가 바닥에 늘어 논 수백마리의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옛날 교통수단이 불편할 때는 운송 중간지역에서 ‘건잽이’가 소금을 뿌렸지만 지금은 냉동차로 생고등어를 안동까지 가져와 염장에서 간고등어 작업을 한다.
옛날에는 영덕 강구어항에 집합된 생고등어를 달구지에 싣고 새벽 5시쯤 출발하면 다음 날 새벽 안동에서 10리 쯤 떨어진 임동면 챗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틀이나 걸린 이동시간으로 인해 고등어가 상하기 쉽기 때문에 이곳에서 ‘건잽이’가 소금을 기술적으로 뿌리면 안동에 도착 할 시간 쯤 되면 제대로 숙성이 되어 가장 맛 좋은 간고등어가 된다. 간고등어는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안에서 뿜어나오는 효소가 소금과 어울려 최상품이 된다는 얘기다.
생고등어가 간고등어로 변하는데는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펄펄했던 생고등어가 ‘간잽이’에 의해 상하기 직전에 소금이 골고루 뿌려져 저려져야 한다. 생고등어는 상하기 직전 지경에 이르러서야 소금의 뿌림을 받고 자숙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 전에는 자아가 살아 있어 간고등어의 역할을 준비하지 못한다. 소금이 골고루 뿌려지지 않으면 어느 한 곳의 자아가 불쑥 튀어 나온다. 때문에 생고등어는 ‘간잽이’에게 고개숙여 순종함으로 제 맛을 내는 간고등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