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도 없다. 무대 위 주인공은 단 한 사람. 낡고 펑퍼짐한 멜빵 바지에 붉은색 셔츠를 입고 줄무늬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스노플레이크(Snowflake)라 불리는 홈리스 아저씨다.
게일 라조예가 가방을 강아지로 바꾸는 마임연기를 하고 있다.
모습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지만 마음은 아이 만큼이나 순진하다. 버려진 고물들로 가득찬 공터에 산다. 외롭고 심심하다. 그래서 고물들을 친구삼아 논다.
고물더미에서 집어든 퍼펫 인형. 집도 없고 가족도 없는 그에게 사내아이 모습의 퍼펫은 한순간 아들이 된다. 그런데 이 아들이 시무룩하니 영 즐겁지가 않다. 어떻게 하면 아들을 웃게할 수 있을까. 인형 아들을 웃기고 관객도 웃게 만드는 그의 마임이 시작된다.
버려진 여행가방. 가방을 열어 속에 있는 까만색 바지를 반쯤씩 가방 옆으로 늘어뜨리고 붉은색 넥타이는 밑으로 끄집어내고 또 두어개 더 잡아당기니 강아지가 된다. 그 강아지를 앞에 놓고 할아버지가 재롱을 부리지만 아들은 여전히 우거지상이다.
나무 판대기를 신발에 붙여 스키를 만든다. 상황에 딱 맞는 음악에 맞춰 슬로우 모션으로 달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설원을 누비는 느낌이다
버려진 침대 헤드보드가 악기가 되고 때론 '호두까기 인형'에 나오는 선율에 맞춰 춤추는 발레리나로 변신한다.
원맨 마임쇼 '스노플레이크'가 16일 오후 7시 사우전드 오크스 시빅 아츠 플라자 안에 있는 셰어 포럼(Scherr Forum) 시어터에서 열린다.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해온 미국인 마임이스트 게일 라조예(Gayle Lajoye)의 무대다.
관객들은 1시간여 그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웃음을 터뜨렸다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를 보며 가슴이 찡해지고 사랑스런 인형아들을 침대에 눕히고 그 곁에서 누워 그를 보듬는 마지막 장면에선 묵직한 감동에 눈물도 한방울 어린다.
게일 라조예는 링글링 브라더스 서커스단의 스타 광대 출신이다. 그는 '스노플레이크'에서 탁월한 연기력에 마임 코믹 슬랩스틱 매직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삶의 교훈을 얹어 관객들에게 말한다. 기쁨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한 걸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평범한 것들에 눈길을 주고 마음을 주는 가운데 얻을 수 있다는 걸.
'스노플레이크'는 1992년 초연이후 미국을 넘어 일본 홍콩 멕시코 호주 스코틀랜드 등을 돌았다. 입장료는 22달러. 어린이는 5세 이상은 되는 것이 좋다.
가는 길은 101번 북쪽 프리웨이를 타고 가다 햄프셔(Hampshire) 로드에서 내려 우회전→사우전드 오크스 불러바드에서 좌회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