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출발해서 베이징을 갔다면 중국이라는 나라가 무척 멀다고 느꼈을 것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탄 뒤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주스에 빵 한 조각을 먹으니 곧 베이징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앗! 벌써 내가 중국 땅에?" 옛날에 내가 대전 정도 간 거리인 것 같았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중국이라는 곳이 떠나기 전부터 같은 동양권이라서인지 편하게 느껴졌음에도 뭔가 궁금증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음식이 너무 기름지지 않을까? 영어는 어느 정도 통할까?"
중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영어까지 잘하는 만능 똑똑이 사라베스 직원 캐롤라인이 준 중국어 간단 회화 메모를 들고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나는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 학생처럼 간단한 중국어를 달달 외워 버렸다.
분주한 공항에서 처음 눈에 띈 것이 스타벅스였다. 우선 카페라떼 한 잔 시켰는데 물가가 싸다는 것 중에 커피는 제외인듯 싶었다. 미화로 4불이나 받았으니.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던 중 거리 상가에 만두를 쪄내는 대나무통들이 높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 흥분을 해서 택시를 세울 뻔 했다. 나는 그만큼 만두를 사랑한다. 그런데 사실은 만두는 속이 아무 것도 안들어 있는 것이고 중국인들은 우리가 알고있는 만두를 '포자'라고 불렀다.
뉴욕의 친구가 미술 관계 일로 먼저 호텔에 와 있었다. 나는 가방만 던져놓고 택시에서 내리기 전 눈 여겨 봐두었던 호텔 근처 포자가게로 향했다. 처음엔 한 판에 12개 나오는 포자를 보고는 한 판만 먹자고 했는데 결국엔 세 판을 먹고 옆 테이블에서 먹는 계란탕까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추가로 시켰다. 계산서를 보고는 어찌나 싸던지 그 동생과 지갑을 앞다투어 꺼내면서 서로 계산하겠다며 싸움이 날뻔했다.
아침에 내린 첫 비행기로 조금 피곤하고 배가 출출했었는데 첫 아침 식사는 가격이나 맛에서 너무 흡족하게 시작한 셈이다. 서울에서 며칠 일찍 도착한 미술대학 교수가 우리 호텔 옆 골목에 분식집이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는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별 세개짜리 호텔 정문 옆 골목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무너져가는 식당이 5~6곳이 줄 지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작은 국수 가게에 들어가 보니 후덥지근한 마지막 여름 공기에 남자들은 웃옷을 다 벗고 있고 테이블도 세 개밖에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생마늘과 나무 젓가락이 막 퍼져 있었다. 메뉴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딱 한가지 그저 국수다.
나는 손가락을 이용해 주문을 하자 주방장인 남자는 밀가루 테이블 앞에서 내 사인을 알아 차리고는 반죽된 국수를 공중에 붕붕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땅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작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가장 신나는 장면이었다. 식당 안주인은 밀가루 국수 가락이 공중곡예를 하는 동안 국물을 더 끊이고 2분이 안되어서 채에 걸러진 국수는 우리상 앞에 세숫대야 같은 대접으로 옮겨졌고 그 무뚝뚝한 아저씨의 표정과 함께 배달됐다.
원래 그 식당에서는 생마늘을 국수와 함께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대신 고추기름 소스를 얹어서 쫄깃쫄깃 한 맛을 즐겼다. 계산을 하는 동안 안주인은 식탁을 대충 닦고는 생마늘 몇 개와 젓가락 4개를 테이블에 휙 던져 놓았다.
결국 그 독특한 테이블 셋업과 미소 한 점 없는 묵뚝뚝한 주인장의 얼굴을 뒤로 하고 반쯤 미소를 지으면서 그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