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운명하기 전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戰方急, 愼勿言我死)”했다는 말은 유명한 마지막 말이다. “종이와 연필을…” 독일이 낳은 세계적 서정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한 마디라고 한다. 하이네는 무엇을 적고 싶었을까? 죽음에 임하여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멋진 시상이 떠올랐던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떠나는 길에 그의 평생 문우(文友)인 지필(紙筆)을 동반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남기는 짧은 말 대신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좀 긴 유언을 남길 수도 있다. 미리 심사숙고해서 하고싶은 말을 가족이나 친지에게 혹은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요새야 이런 긴 유언을 녹음해 남길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글로 남겨야 했다. 이렇게 글로 남긴 유언은 유서(유언서) 또는 유언장이 된다. 오늘날 이런 계획적이고 여유를 갖고 준비된 유서는 대개가 사자의 사후 재산처분문제에 관한 것이고 이를 유언장에 명시하고 적법한 절차를 통해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기는 고백도 마지막 말이다. 일생동안 감춰왔던 사실을 토로하거나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임종고백, 양심고백, 불륜고백등이 이런 것이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는 대개가 솔직해지고 오랫동안 숨겨왔던 사실이나 양심에 거스리는 일을 털어놓게 된다. 예로부터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제 유비가 임종을 맞아 그의 아둔한 아들 유선을 제갈 량에게 부탁할 때 했다는 말이다. 옛날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에게 상소할 때 신하들이 많이 쓰던 말이기도 하다.
영어에서 재산처분을 다루는 유언은 ‘will’ 이라고 하는데 죽기 바로전에 내뱉는 짧은 말과는 구분해서 쓴다. 죽음에 임해서 남기는 짧은 말은 일반적으로 ‘dying words’ 또는 ‘last words’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인사들의 유언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고 이런 유언은 때때로 명언으로 남아 인구에 회자되기도 한다. 그런데 명언으로 전해지는 유언이 사실과 다를 때도 있고 그 유언의 참 뜻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경우도 있다.
예컨데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되기 전에 내 뱉었다는 “부루투스 너마저!”는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고 시저의 살해라는 중요 사건을 극화한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일 뿐이라고 한다. 실제 시저는 측근들이 손쓸 사이도 없이 암살자들에게 둘러싸여 무려 스무군데가 넘게 칼을 맞고 한마디 말할 틈도 없이 죽고 말았다고 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괴테의 마지막 말은 “Mehr Licht!”로 알려져 있다. 영어로는 “More light!”(좀 더 빛을!)가 되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말이 많다. 단순히 방이 어두워 창문을 열어 달랜 것이라느니, 흐려지고 캄캄해지는 사자의 의식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라느니, 심지어는 보다 개명된 사회를 위한 괴테의 소망이라는 다소 엉뚱한 설까지 있다. 혹자는 괴테가 한 말은 “Mehr Licht!”가 아니고 “Mehr nicht!” 라고한다. “Mehr nicht” 는 “No more”(이제 그만)이니 “아, 다 이루었다!”라는 좀 극적인 해석도 가능해 진다.
유명인사들의 마지막 말은 다소 드라마틱해도 듣는 그대로가 좋은 것이고 따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마지막 유언은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희곡작가 유진 오닐의 것이다. “내 그럴줄 알았지. 호텔방에서 나서, 제기랄, 호텔방에서 죽네.(I knew it. I knew it. Born in a hotel room - and God damn it - died in a hotel r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