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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칼럼] 진정한 친구란

Atlanta

2017.02.0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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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어느 직장인 사이트를 통해 ‘친구’에 관한 조사를 했다. 결과를 보니 요즘은 ‘진정한 친구’를 찾는 일이 힘들다고 응답한 사람이 99.6%나 되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일이 점점 힘들어 진다.

친구란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존재다.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는 통념 때문에 여러 모임에 참석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으려고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고, SNS나 카톡을 통해 의미 없는 문자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은 속 빈 강정 같을 뿐,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국어사전에는 친구란 ‘오랫동안 가까이 사귄 벗’ 혹은 ‘나이나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만난 기간이나 처지와 관계없이 친구는 친구이다. 친구를 정할 때, 조건이나 신분을 따지는 까닭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 친구 관계를 연결하여서 유익함을 얻으려 하는 사람이 가진 이기적 속성 때문이다.

친구를 얻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친구의 기준을 보면 “세상에는 세 부류의 유익한 벗과 세 부류의 해로운 벗이 있는데, 정직한 사람, 성실한 사람, 견문이 넓은 사람은 유익한 벗이요, 겉치레를 중시하는 사람, 아첨 잘하는 사람, 말만 앞세우고 성의가 없는 사람은 해로운 벗이다”라고 되어있다. 물론, 주변에 품성이 맑고 어진 벗을 많이 두는 것은 복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어떤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할지 생각하기 전에 ‘내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친구일까’ 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가끔 소외감을 느낄 때 위로를 주는 존재가 친구다. 운 좋게도 나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살면서도 언제나 먼저 염려해 주고, 더 바쁘게 살면서도 무슨 일이 생기면 한걸음에 달려와서 내 곁을 지켜준다. 오랜 시간 서로 만나지 못해도 끊임없이 안부를 챙기고, 여행을 떠날 때면 나를 데리고 가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친구들이다.

어쩌면 친구들이 주는 유대감 덕분에 세상살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쉽게 견뎌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인간관계가 이용가치의 유무에서 기인한다는 느낌으로 실망할 때, 사심 없는 친구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어떤 일을 그르쳐 스스로 초라하다 느껴질 때, 때로 현실이 억울하게 느껴져 괜스레 서글퍼질 때, 차 한 잔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울컥 복받치는 설움을 삭혀주는 친구가 있는데 어찌 사는 일이 힘들기만 하다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내게는 진정한 친구를 위해 정해 놓은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언제 어디서건 내가 필요한 친구에게는 반드시 달려갈 것, 둘째는 친구랑 먹은 밥값이나 찻값은 내가 부담할 것, 셋째는 언제나 솔직한 마음으로 친구를 대할 것’ 등이다. 친구 관계라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내가 원한다고 모두 친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적어도 시간과 물질 그리고 마음, 세 가지는 투자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새로운 규칙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동기간보다 더 가까웠던 사람을 잃었다. 내가 보살펴야 하는 동생이었고, 생각나면 보고 싶어 달려가던 친구이기도 했고, 사는 일에 용기를 잃지 않게 해주던 나의 멘토이기도 했다. 내 일상 속에 그가 남겨놓은 공간이 너무나도 커서 문득문득 느끼는 허망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쑹덩쑹덩 잘라내는 듯하다.

살다가 한날한시에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대충 엇비슷하게 세상을 떠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를 보내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내가 아무리 사랑하고 육친보다 더 귀히 여긴다 해도 이 세상을 함께 갈 수 없다면 ‘친구를 위한 세 가지 규칙’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떠나보내고 나서야, 진정한 친구란 늘그막까지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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