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새끼'를 금지옥엽처럼 키우는 부모가 자녀에게 거는 기대는 베푸는 은혜만큼 경이적이다.
우유 먹는 일도 걷기와 말하기도 이웃집 아이보다 앞서야 흐뭇하다. 학교 입학 이후엔 마땅히 우등생이 돼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부모의 과욕이다.
욕심이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망의 뿌리가 자신의 과욕에서 비롯됐다고 인정할 순 없다. 자책감은 마음 속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의 대뇌는 재빨리 비난의 화살을 나 아닌 다른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대상은 당연히 내 노력에 못 미치는 자녀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만 아니면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아이를 비난하며 화를 풀다 보면 부모의 마음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엔 상처가 남는다. 의학적으로 어린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아동 학대'에 해당한다.
아동 학대의 종류는 크게 방임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등 네 가지다. 80%는 가정에서 일어나며 부모의 교육 수준.소득 수준.연령.종교 등과 무관하다.
예컨대 아이에게 욕이나 협박을 하는 것은 물론 소리 치기 수준에 안 맞는 기대를 하면서 괴롭히기 "또래와 달리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식의 부정적인 비교 아이 앞에서의 부부싸움 등은 모두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 물론 이를 학대로 인식조차 못하는 부모도 많다.
한국인들에게 일반화되고 강요된 조기 교육이나 과도한 입시교육만 해도 2003년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아동권리 침해 사례로 지적된 바 있다. 아이들에게도 인격과 시각이 있으며 의사 표현과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합의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류의 학대처럼 정신적 학대 역시 평생 동안 지속될 수 있는 후유증을 남긴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예컨대 강제적 교육은 매사에 흥미를 잃고 두려움을 갖는 아이를 만들기 쉽다.
이런 아이는 훗날 정서 불안 자신감 상실 창의력 저하 심한 의존이나 반항 학습 거부 등을 나타낸다.
과잉 교육도 문제다. 뇌에 심한 자극을 줘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과부하된 뇌는 뇌세포 사이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이는 총명함이라는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정신질환이라는 부정적 결과를 빚어 내기도 한다.
이 모든 후유증이 본능적으로 두려운 아이들은 수시로 외친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라고. 문제는 아이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부모에게 있다.
미성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과연 나는 아이에게 '사랑'이나 '너를 위해서'란 미명 아래 정서적 학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자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