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1992년 ‘저수지의 개들’로 선댄스 영화제를 경악시키며 등장했다.
지독한 유머 속에 흐르는 유혈 낭자한 미장센은 그에게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란 별명을 안겨주었다.
복고적이나 자유분방하고 외설적이며 잔혹하여 ‘현대영화의 악동’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 그를 설명하려면 ‘타란티노적’이란 형용사를 사용해야 가능해진다.
그가 이번엔 1970년대에 B급 영화 전용 상영관인 ‘그라인드 하우스’의 2본 동시상영 영화에 관심을 쏟았다.
동료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함께 동시 상영용 영화를 만들기로 의기 투합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Death Proof)’와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를 묶은 ‘그라인드하우스(Grindhouse)’다.
(그러나 북미 이외의 지역에선 독립된 영화로 따로 상영됨.)
당시 그라인드하우스에서 상영되던 B급 영화, 쿵후 영화, 마카로니 웨스턴, 폼 폼 걸 (치어리더) 영화,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의 특성과 분위기를 새 영화에 담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그러한 특성과 분위기를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일부러 필름 열화(비오는 현상), 지직거리는 소리, 사라진 릴, 중복 프레임, 변색 등을 활용했다.
‘데쓰 프루프’는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전반부: 텍사스 오스틴의 유명한 라디오 DJ 정글 줄리아는 친구들과 즐거운 주말 저녁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스턴트맨 마이크’라는 변태 성욕자가 그녀들을 노리고 다가오는데 그의 차가 ‘데쓰 프루프’된(사망 방지의) 특수 차량이다.
후반부: 14개월 후 무대가 테네시주 레바논으로 바뀌면서 다른 네 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 중 두 명은 스턴트우먼으로 영화 ‘배니싱 포인트(Vanishing Point, 1971)’를 통해 유명해진 440 엔진의 1970년형 닷지 챌린저를 시험 운전하게 되는데 이들의 뒤를 ‘스턴트맨 마이크’가 쫓기 시작한다.
두 부분 사이에 ‘14개월 후’라는 자막만 없더라면 다른 사람의 다른 이야기처럼 보일 정도로 남자 주인공(커트 러셀 분)의 캐릭터가 달리 표현되고 있다.
전반부에선 카리스마가 넘치는 마초 이미지인데 반해 후반부에선 가학적이되 겁 많은 캐릭터로 묘사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마지막 장면들이 매우 강렬하다.
하나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고, 하나는 범죄를 응징하는 장면인데, 관객들로 하여금 섬뜩한 쾌감을 안겨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예의 타란티노다운 잔혹함이 생생히 드러나는 명장면들이다.
전반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쾌감을 느낀 관객들은 마음 한 편에 불편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후반부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그 불편함이 씻기는 듯한 후련함을 느끼게 된다.
타란티노의 마술이다.
영화 말미에 약 20분간에 걸쳐 펼쳐지는 카 체이스는 단순한 카 체이스가 아니라 소위 ‘돛달기’라 하여 사람을 본네트 위에 싣고 달리는 가운데 펼쳐지는 카 체이스라 한층 더한 스릴과 박진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