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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함께 마라톤 조앤 정, 속도를 버리니 사람을 얻었죠

Los Angeles

2007.12.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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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노렸던 런던대회서 파트너 잃고 쩔쩔매는 시각장애인 손잡고 달려, 15년간 74회 완주보다 '더불어 뛰는 감동’ 더 커 LA서 3년째 봉사활동
'2004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정씨가 한국서 참가한 시각장애인 유정하씨의 손을 이끌고 역주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함께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2004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정씨가 한국서 참가한 시각장애인 유정하씨의 손을 이끌고 역주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함께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지난 10월 열린 롱비치 마라톤 대회장에서 정씨가 동반 출전한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열의를 다지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롱비치 마라톤 대회장에서 정씨가 동반 출전한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열의를 다지고 있다.

조앤 정씨와 한인 마라톤클럽(KMC) 회원들이 시각장애인들을 돌보는 모습.

조앤 정씨와 한인 마라톤클럽(KMC) 회원들이 시각장애인들을 돌보는 모습.

흔히들 마라톤을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외롭고 쓸쓸한 그 싸움은 누가 대신 뛰어줄 수가 없는 것이라며. 단지 피니시 라인을 향해 우직하게 한 발씩 내딛는 '혼자만의 레이스'라고. 그래서 마라톤은 곧잘 '인생'과 비교되기도 한다.

조앤 정(59.스튜디오 시티)씨에게도 마라톤은 분명 그랬다. 40이 넘어 도전의식에 한껏 고취돼 참가한 첫 대회를 완주한 뒤 감격의 눈물을 쏟은 때 부터 마라톤 완주를 74회나 이룬 지금에 이르기까지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언제나 혼자와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를 가다듬고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정씨의 마라톤은 달라졌다. 종전의 마라톤이 자신 또는 인생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줬다면 지금의 마라톤은 사람과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줬다고나 할까.

정씨는 이제 혼자 달리지 않는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남들보다 조금 더 불우한 이들과 나란히 함께 달린다.

정씨는 지난 2004년부터 매주 두 차례씩 장애인들을 위해 마라톤 교실을 운영해 오고 있다. 금요일 오전에는 15명 정도의 시각 장애인들의 눈과 손이 되고 토요일에도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청소년 40여명을 이끌고 공원을 달린다.

이들과의 달리기는 무더위건 비가 오건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

1년에 한두차례는 마라톤 대회에 꼭 장애인들과 함께 참가한다. 지난 '2006 LA마라톤' 대회에서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29세 장애인과 첫 동반 참가해 6시간30분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또 지난 10월 열린 롱비치 5㎞ 마라톤 대회에서도 정신 지체 장애아 4명과 함께 뛰면서 이들에게 첫 마라톤 완주의 희열을 선사했다. 이들 모두는 마라톤 교실에 참가하기 전에는 남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지도 못하고 똑바로 서있는 것 조차 불안했던 이들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정씨의 관심은 성치 않은 몸.정신으로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이들을 직접 만나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내가 얼마나 못된 사람이었는지 알아요? 성격은 또 얼마나 급했다구…. 그런데 마라톤을 시작하고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긴거죠. 바로 그 때 장애인들이 내 눈에 들어왔어요."

장애인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직전 '2004 런던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자비를 들여 영국까지 날아가 참가하는 대회인만큼 입상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런데 정씨의 앞에 갑자기 파트너를 잃고 쩔쩔매는 한국인 시각장애인이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파트너 없이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는 일.

그의 열정을 대번에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 정씨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중도포기의 위기를 이겨내면서 마침내 동반 완주.

시각장애인과 피니시 라인을 함께 끊었을 때의 그 아름다운 감동을 정씨는 결코 잊지 못한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마라톤은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그들을 대신해 뛸 수는 없지만 함께 뛸 수는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은 불우했지만 우리들이 지금보다 조금씩만 더 노력한다면 그들도 다시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요."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정씨는 모든 참가 장애인들의 목 위에 직접 만든 메달 하나씩을 걸어준다.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겨냈다는 훈장이자 앞으로 함께 세상을 헤쳐나가자는 증표다.

마라톤 피니시 라인에서 장애인들이 지어내는 표정보다 이 세상에서 더 감동적인 것은 없다는 정씨. 그는 안다. 인생이란 늘 함께 달리고 마지막 결승선에서 같이 웃을 수 있는 긴 여정의 마라톤이라는 것을….

◇조앤 정씨는…

평범한 가정 주부이자 개인 호스피스 인력고용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비즈니스 우먼이다. LA마라톤 대회 1위(55~59세 그룹)등 입상경험이 풍부한 뛰어난 마라토너이면서 철인3종경기에도 출전한 바 있는 맹렬 여성이다.

2000년 창설한 한인마라톤클럽(KMC)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정부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법체류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다. 정씨는 내년 2월3일 ‘헌팅턴비치 마라톤’ 대회에도 정신 지체 장애아 5명을 이끌고 출전한다.

함께 마라톤을 즐기고픈 이들이나 장애인 마라톤 교실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길 원하는 한인들을 위해 정씨의 전화(213-453-4864)는 항상 켜져 있다.

글: 서우석 기자

사진: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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