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삼하 15:17)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대를 건너가니” (삼하 15:23)
다윗은 예루살렘을 서둘러 빠져 나갑니다. 그런데 전혀 리더답지 못한 모습으로 도망합니다. 일단 후궁 10명을 뒤에 남겨 놓은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입니다. 게다가 참 ‘왕 답지’못하게 도망갑니다. 17절에 분명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무슨 말입니까? 누가 제일 먼저 나간 것입니까? 왕인 다윗이 제일 먼저 도망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서 도망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 그 선장이 욕을 먹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사고가 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리더인 선장이 제일 먼저 도망갔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선장답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다윗의 도피행보는 세월호 선장과 똑같습니다. 그는 왕이면서도 가장 먼저 백성들 앞에서 도망가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 모습을 보면서 “~다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왕이라고 불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왕만 그렇습니까? 성도라고 불림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왕답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성도답게 살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자 그런데, 왕답지 못하게 제일 먼저 도망가던 다윗이 벧메르학이라는 장소에서 잠깐 멈춰서는데 바로 그곳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그 곳을 지나면서 다윗은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 앞으로 지나가게 합니다. 가드 사람 잇대도 만나게 되는데 잇대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도 다 자기 앞으로 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23절을 보면 모든 백성을 건너가게 한 뒤에 자기도 건너갑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까까지 왕답지 못하게 도망가던 사람이, 맨 앞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던 왕이 갑자기 왕다운 모습을 회복한 것입니다. 리더답게 맨 뒤로 빠져 백성을 먼저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한 마디로 다윗이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왕다움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벧메르학이라는 장소에 잠깐 멈췄을 때 그에게 깨달음이 임했다는 것만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벧메르학의 뜻은 ‘먼 성’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그는 이 곳에 잠깐 멈춰서 쉬는 동안 인생에서 ‘셀라’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을 통해 잃어버렸던 왕 다움을 회복한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 땅의 교회가, 그리고 교회의 예배 시간이 벧메르학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임했습니다. 왕답지 못한 왕이 왕다움을 회복한 곳이 벧메르학이라면, 성도답지 못한 우리가 성도다움을 회복하는 곳, 교회가 바로 그런 벧메르학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땅의 교회들이 벧메르학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도답지 못한 삶을 살지 못하고 이름만 성도인 분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그 마음에 찔림과 불편함이 생기기를, 그래서 결국 성도다움을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부터 우리 아틀란타 지역 교회들의 별명이 아틀란타의 벧메르학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