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아름다운 우리말]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New York

2017.03.01 17:4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조 현 용 / 경희대학교 교수·한국어교육 전공
사람의 이야기에는 맛이 있다. 말맛이라고도 하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도 나누게 된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다. 그러나 모든 말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안 함만 못하는 때도 많다. 때론 후회와 상처가 가득한 전장(戰場)이 되고 만다.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버린 것이다. 어떤 말을 하면 안 될까? 사실 답은 말을 시작하는 표현에 다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이런 이야기까지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원래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표현이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스스로 이런 이야기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조절이 안 되어 더 쏟아내고 후회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힘 조절이 안 된 상태다.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을 때 그 말은 상처가 된다. 정말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충고도 생채기로 남는다.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은 종종 폭력일 수 있다.

'속되게 말해서'라는 표현도 조심해야 한다. 서로 허물없는 사이에서는 이런 표현 없이도 속된 말을 할 수 있다. 어릴 적 친구와의 대화 속에는 '욕'도 추임새에 불과하다. 편한 사이에서는 속된 말을 잔뜩 늘어놓는다. 그런데 서로 부담스러운 사이에서는 '속되게 말해서'라는 표현을 쓴다. 비슷하게 사용하는 말로는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이 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라'라는 표현도 한다. 모두 조심해야 하는 표현들이다. 속된 사이가 아니라면 즉, 서로 불편한 사이라면 속되게 말해서는 안 된다. 무례하게 들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진짜 무례하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으라는 말 중에서 기분 나쁘지 않았던 말이 있었던가?

한편 듣는 사람은 듣고 싶을지 모르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다. 그런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이 '너에게만 말하는 거야' '이건 비밀인데'와 같은 표현이다. 비밀은 내 입을 나서는 순간 봉인 해제 되어 버린다. 이 비밀이 계속 유지 될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겁이 나는지 이런 말도 덧붙인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 정말 이야기를 안 하게 될까? 정말 안 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건가? 진짜 비밀이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비밀은 내 입속에 있어야 비밀이다. 듣는 이에게 비밀이라는 짐을 주지 말라. 나한테 비밀이라고 했던 어떤 이야기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될 때의 황당함도 있다. 나는 비밀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말한 사람은 이미 비밀을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녔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표현이라는 점이다. 충고라면서 무례하게 이야기하고, 친하지도 않으면서 속되게 말하고, 비밀도 아닌 말을 괜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약자는 감히 이런 말을 윗사람에게 할 수 없다. 강자가 기분 나쁠 말을 무례하게 할 수 있겠는가? 속된 말을 속되게 했다가 뒷감당이 되겠는가? 정보를 줄 수는 있겠지만 윗사람에게 비밀을 몰래 말한다는 것은 안 될 말이다.

인간은 말을 하는 동물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이다. 그래서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근거는 말을 한다는 점이다. 즉, 소통을 즐겁게 한다는 의미이다. 말은 맛있게 해야 한다. 대화가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 말맛 나는 세상을 꿈꾼다. 오늘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