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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나무를 옮겨 심으며 / 고대석

Los Angeles

2008.01.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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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옮겨진 나무 이민자의 삶과 같아…그 새로운 땅에서 잎과 꽃 피울때까지
본 곳에서 잘 살고 있는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다는 것은 그 나무의 생명을 도모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물며 사람을 옮겨 살게 한다는 것이 어찌 그 생명 보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생명동질이라는 의미에서 나무의 생명도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겠거늘 나는 그 생명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생각했던 것 같다.

적당한 계절이 아닌 줄 알면서도 특별사정이라는 핑계로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기로 했다. 뒤뜰 동쪽 벽을 따라 꽃 나무 십여 그루가 다른 나무들과 섞여 산재해 있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이번에 뒤뜰을 재 조정하면서 서쪽 담벽을 따라 한데 모아서 옮겨 심기로 하고 흩어져 심겨있던 장미 나무들은 파내어 동쪽 벽 쪽으로 옮겨 심어 장미 벽을 만들기로 했다.

담벽과 철제 펜스를 따라 'ㄷ' 자로 1 피트 높이의 낮은 담벽을 돌로 쌓아 올리고 화단 넓이는 3 피트로 해서 나무와 꽃들을 새로 심기도 하고 옮겨 심기도 하기로 했다. 남가주에 물 사정이 좋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늙은 잔디를 모두 파 내고 온 뒤 뜰을 돌로 깔기로 했다.

그러면 정원사도 올 필요가 없으니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절수도 하게 되니 이중으로 절약이 될 것이라는 내 얄팍한 경제 이론에 의한 것이었다. 모든 공사가 완료되고 이제는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할 차례가 되었다.

한 일요일 아침을 D-데이로 삼아 삽질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름답지 않게 구름이 끼어 해를 가리워서 하루 종일 일하기는 적격일 것 같았다. 미리 사다 부어놓은 거름 흙을 땅 흙과 섞어 가며 돌을 골라내고 풀 뿌리들을 걷어 올리고 높낮이를 맞추어가며 준비 작업을 끝내어 놓았다.

이제 남은 일은 열댓 그루의 나무를 파내는 일이었다. 나무 주위의 흙을 퍼내며 내려가서 뿌리의 흙을 다치지 않고 떠 내려 애썼지만 오랜 세월 터잡은 뿌리가 어디 그리 쉽게 빠져 나오겠는가! 어떤 굵은 뿌리는 높은 담장 밑으로 뻗어 있었고 잔 뿌리들은 사방팔방으로 널려져 생명 유지를 위해 열심히 살아 온 기존 세력의 터전답게 힘 있게 땅과 결합되어 있었다. 이런 뿌리가 없었다면 어찌 푸른 잎과 꽃을 피울 수 있었겠는가!

장비라고는 삽 한 자루 들고 시작했는데 일이 만만치 않았다. 땀이 흐른다. 숨이 차 온다. 그래도 마누라 앞에서 큰 소리하며 마치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일이니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굵은 뿌리는 적당한 선에서 삽으로 찍어 끊어 내고 넓게 퍼진 잔 가지 뿌리들은 힘을 모아 잡아 당겨 뽑아 내니 뿌리와 엉켜있던 모든 흙은 떨어져 나가고 심어진 이후 처음으로 뿌리는 공기를 직접 접촉하게 되고 햇빛도 쪼이게 되고 지나가는 구름도 보게 되었다.

뿌리는 흙과 함께 나무 가지 퍼진 넓이 만큼 떠내야 한다는데 잘리어 나가고 남은 뿌리가 앙상하게 뽑혀 나오곤 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당장 내가 힘이 겨우니 나중에야 어찌 되든 하나씩 뽑혀 나오는 나무의 숫자에만 만족하며 깊은 숨을 몰아 뿜어 내곤 했다.

서쪽 담벽을 따라 준비된 곳에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득 채우고 뽑아 낸 나무를 들어다 구덩이에 넣었다. 구덩이가 좁으면 더 파면 될 일을 귀찮다고 뿌리를 구겨서 넣고 어떤 뿌리 끝은 밖으로 빠져 나올 만큼 위로 향하는데도 흙으로 덮고 발로 꼭꼭 밟아만 주었다. 이렇게 열댓 그루를 옮겨 심고 나는 일을 마쳤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아내에게서 칭찬도 듣고 맛있는 점심도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3일 정도가 되니 나뭇잎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나무는 아예 잎이 바싹 말라서 부스러져 내렸다. 누런 나뭇잎도 다음 날은 땅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는데도 말이다.

아침 일찍 나가 나뭇잎을 만져 보며 '살아나거라' 격려의 말을 남겨 주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또 나뭇잎을 쓰다듬으며 '덥지 않았느냐' 물으며 물을 부어 준다. 몇 그루나 살아 남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옮겨 심는 일을 성심껏 하지 못한 듯 하여 마음도 어정쩡하다. 그래도 얼마 간 이 돌봄의 일을 계속하리라 마음 다져 본다.

고향 땅에 뿌리 내리고 살다가 미국 땅으로 이민해 와 살고 있는 우리는 마치 옮겨 진 나무와 같다는 생각이 떠 오를 때 나는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요즘 태평양을 건너는 이들 중에는 굵은 뿌리와 잔 뿌리 모두를 흙 하나 떨구지 않고 잘 보듬어 안아 가지고 와서 새로운 이 땅에 어렵지 않게 심기우는 이들도 있나 보다.

오래 전 내가 옮겨 올 때만 해도 짧게 잘라진 뿌리에 흙 한 덩이 붙어 있지 못한 나무 같은 형편으로 이곳에 옮겨 심어져 물 줄기를 찾아 허덕이던 일이 아련하기만 하다. 그 때 가끔씩 메마른 내 웅덩이에 물을 부어 주던 이들은 지금은 은퇴한 노인이 되었고 나 자신도 곧 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나뭇잎도 파랗게 돋아 낼 수 있고 꽃도 피워 낼 수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주위에는 아직도 뿌리가 짧거나 흙이 털어져 없거나 물 공급이 되지 않아 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 같은 처지의 이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격려하며 물 한 통이라도 전하진 못할지라도 그들 마음을 쓰리게 하는 말을 하고 약점을 이용하여 이익을 꾀하거나 상위적 권위를 행사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격려의 물 한 그릇을 넘겨 주던 그 분들의 은혜를 다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니 누런 나뭇잎 같은 얼굴과 마음을 하고 힘 겹게 뿌리 내리려 애쓰는 다른 이들에게 그 받은 물 그릇을 마음과 함께 넘겨 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무도 옮겨진 새 땅에서 살아 남기가 저리도 어렵거든 하물며 '천국 같은 새 땅'이라며 태평양 건너 이 사막 땅에 온 내 동족들이 견디고 살아 남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이겠는가.

성서에는 새 땅이 매우 좋은 곳이라 했다. 세상의 것들이 다 지나가고 눈물도 아픔도 없는 곳이라 했다. 죽음이라는 것 조차도 있지 않다고 했다. 어떤 곳일까. 거기는 이민자의 아픔이 없는 곳일까. 짓 누름도 짓 밟힘도 없는 곳일까. 이곳 새 땅으로 이민 오면서 품었던 그 "새 땅"의 꿈이 그 곳에서는 실현되는 그런 곳일까. 뿌리가 다 잘라져 흡수력이 없는데도 그 '새 땅'에서는 푸른 잎과 꽃을 피워 낼 수 있는 그런 곳일까.

정말로 그런 곳이라면 내 동족들이 많이 가면 좋겠다. 특히 뿌리가 잘려진 내 동족들이 많이 가면 좋겠다. 흙 한줌 뿌리 그루터기에 달지 못 하고 새 땅이라 불리던 이 미국 땅에 옮겨 와서 애 쓰고 있는 내 동족들이 그 "새 땅'에는 아주 많이 갈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무에 물을 주며 생각에 몰두했는지 물이 넘쳐 흐른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다듬지 못하는 주제에 인간의 생명까지 끌어 내는 상념에 빠져 있었나보다. 그렇더라도 나무나 인간이나 생명은 귀중한 것이니 생명을 소생시키는 물 줄기를 끊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 모두가 그 '새 땅'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울 때까지 말이다.

<약력>
▷‘한국수필’ 신인상 수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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