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째에 접어든 손자 지환과 공놀이를 하며 활짝 웃고있는 박복남 패밀리 리포터. 아이의 함박웃음은 할머니에겐 불로초다.
“자식 다 키워 놓고 이제 한숨 돌리려고 하는데, 또 손자를 키워?”
대부분의 실버 세대는 아이를 봐 달라는 자식의 부탁에 고개를 흔듭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여유 있는 노년을 즐기고 싶은 그 마음, 이해 되지 않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 노년층에서 ‘손자 돌보기는 제2의 직업’이라고 여기는 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노인은 젊어지고, 아이는 올바르게 성장하니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한의사 부부인 아들 내외를 위해 지난해 손자 지환이의 육아를 맡은 박복남(57)씨도 그런 분입니다. 지환이가 20개월에 접어든 요즘, 그간의 경험담을 들어봤습니다.
"보통 하루에 한 번씩 보는 똥이 사흘이 지나도록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물도 20㏄ 먹이고 가벼운 체조도 시켜보고 운동되라고 잠깐 엎드려서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어제 오후 드디어 노란색 찰떡 같은 똥을 누는데 눈썹이 빨개지면서 용을 쓰더니 아주 시원하게 봤다. '아이구 잘했어요.' 입에서 연신 잘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똥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2006년 7월 5일)
내 배로 낳은 아이라도 똥 냄새는 지독한 법인데 할머니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손자가 눈 똥이 이렇게 반가울 수 없는 사람. 바로 할머니다. 박복남씨는 손자 지환이를 맞이하기 위해 집 도배와 장판 갈기 부터 시작했다. 워낙 육아 경험을 한 지 오래라 YWCA에서 우유 먹이기 이유식과 간식 만들기 책 읽어주기 등을 가르쳐 주는 베이비시터 교육을 받았다. 퇴직한 남편에게서 도와주겠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며느리 산후조리도 자청했다.
손자가 9개월 될 때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공부하던 며느리는 많아야 1주에 2회 바쁘면 주말에 한 번밖에 아이를 보러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환이는 엄마와 할머니의 정성 덕에 모유를 비교적 오랜 기간 먹을 수 있었다. 며느리는 서울에 올 때마다 얼린 모유를 담은 아이스팩을 30여 개씩 날랐다. 급할 때는 얼린 모유를 고속버스 택배로 부쳤다.
"바쁘고 몸이 약한 아이가 잠을 설쳐가면서 모유를 짜서 보내니 안쓰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견스러웠지요. 손자에게 '엄마의 정성이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먹어라'하면서 부지런히 먹였습니다."
아들 내외가 평상시에는 곁에 없는 터라 아이가 아플 때는 겁도 나고 속도 탔다. 지환이가 감기로 39도 넘게 열이 올랐을 때나 몸에 발진이 돋았을 때는 남편과 번갈아 밤을 새워 가며 간호했다. 그러던 중 박씨가 신우염이 생겨 입원하기도 했다. 그래서 올 초부터는 일주일에 3회씩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있다.
박씨는 "손자를 돌보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체력 관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음으로는 손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쉬어야 합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박씨가 매일 저녁 인근 공원을 1시간가량 걷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편에게 손자를 부탁하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잠시 땀을 흘리고 오기도 한다.
육아에 대한 기존 관념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조부모가 알고 있는 육아상식은 옛날 것입니다. 바뀌었다면 바뀐 것에 맞춰야지요. 우리가 옳다고 아이 부모에게 고집을 피우면 갈등이 생깁니다."
며느리와는 휴대전화 문자와 e-메일로 늘 소식을 주고받는다. 의견이 엇갈리면 가족회의도 연다. 지환이를 생후 6개월부터 따로 재우게 된 것도 회의를 거쳐서 결정했다. 박씨는 "손자를 키우니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 늘 "고생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얘기한단다.
그는 손자 돌보기를 시작할 때 '일단 만 두 돌까지'로 약속했다. "저는 열심히 했더라도 며느리 입장에선 맘에 안 들 수도 있지 않겠어요? 서로 통하면 연장하더라도 1년이나 2년 단위로 기한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 친구들에게도 '손자 한 명당 2년씩만 사랑에 빠져 보라'고 권합니다. 거들어주는 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잖아요. 일하는 자식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겁니다."
‘손자와 놀기’ 노하우 있다
손자를 돌보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오랜만에 만난다면 아이가 서먹해 할 수도 있다. 다음은 2005년 할머니가 된 추정림(61)씨의 제안.
▶단 하루를 지내더라도 계획표를 세우자. 노는 시간,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정해 아이가 규칙적인 생활을 익히게 한다. ▶밝고 고운 색깔의 옷을 입자. 아이에게 환한 인상을 준다.
▶아이의 행동에 다소 과장된 반응을 보여 준다. “아이구, 우리 ○○이 정말 잘했어요!” 하는 식으로 감탄하면 아이는 칭찬이 좋아 더욱 열심히 무언가를 시도한다.
▶장난감을 사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일상과 자연에서 놀이를 찾아보자. 여름철 화분에 물 주기를 시키면서 꽃 이름과 색깔을 익히게 하는 식이다. “이건 ○○이 화분”이라고 정해 놓고 그 화분에만 물을 주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겨울에는 나무상자에 모래를 채워 놓고 베란다나 마당에서 뒤적거리며 놀게 해보면 어떨까. ^혼자서 노는 법을 가르친다. 예컨대 바둑알과 통 2개를 주고 흰 돌과 검은 돌을 각각 담게 해본다. “다 담으면 맛있는 간식 만들어 줄게”라고 하면 대개 신나게 따라 한다. 약속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할머니에 대한 믿음도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