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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선물을 주는 식당

New York

2017.04.0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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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주 / 수필가
사람들은 흔히 좋은 식당의 조건으로 맛과 분위기를 꼽는다. 분위기 좋고 음식 맛까지 좋다면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식당이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식당은 흔하지 않다.

내게 있어 좋은 식당은 무조건 음식 맛이 좋은 곳이다. 그래서 낙원동 미로 같은 먹거리 골목의 할머니 칼국수 집 4천원짜리 칼국수가 최고라 생각하고, 을지로 뒷길에서 연탄불에 구워주는 돼지갈비를 불편한 플라스틱 의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먹으면서도 희희낙락하고, 강원도 평창 시장 안의 6천원짜리 한정식에 자지러진다. 사람들이 대접하느라 일인당 15만원, 20만원짜리 저녁 초대에도 가서 먹어봤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곳엔 소박한 음식에서 느끼는 그 사이다처럼 빵! 터지는 한 방이 없다.

둘째 사위가 내가 꼭 가봐야 하는 식당이 있다는 바람에 두 딸들과 함께 갔다. 인테리어는 마치 벨지움 스타일 같고(벨지움 사람 아니랄까봐 좋은 건 모두 벨지움 스타일이란다), 미래에서 온 식당 같은 분위기라며 극찬을 한다.

간판도 없고, 입구도 소박한 식당은 안에 들어가니 왼쪽엔 두 사람을 위한 작은 테이블이, 오른쪽엔 4명이 식사할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양쪽에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구조였다. 가운데가 통로다. 칠하지 않고 상처도 나있는 날것의 거친 벽엔 식당 이름이 쓰여 있는 포스터가 몇 개 붙어 있다. 실내는 마치 설치미술처럼 심플하면서도 멋스럽고, 미니멀리즘의 극치로 보였다.

한국 셰프가 하는 식당이지만 사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 식당은 아니다. 식단이 3개 그룹으로 나뉘어져 그중 한 가지씩 3가지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다. 우리는 셋이서 각각 다른 음식을 주문해서 9가지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큰 접시를 쓰는 다른 식당과 달리 이 집은 메인 디시가 중간 사이즈로, 소스는 미니 디시에 나왔다. 그런데 그 음식이 보기도 좋으려니와 알차고, 특히 맛이 뛰어났다. 중간색의 접시에 지나친 화장끼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음식은 맛도, 향도, 색깔도, 모두가 은밀했다. 보기엔 유난스럽지 않은데, 입 안에 들어오면 입 안에서 착착 감기면서 치고 들어오는 맛이 놀랍다.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들에 가보면 자기네가 잘하는 한두 가지 빼면 다 그저 그런 정도의 비슷한 수준의 맛이다. 이 식당은 메뉴 하나하나가 다 개성 있고, 맛이 뛰어났다. 그 비결을 셰프 박정현은 좋은 재료로, 한국음식의 기본인 장과 그만의 창의적인 소스로 만든다는 음식철학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36불에 이같이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이같이 한국이 살아있는 고급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게 믿을 수 없다.

좋아하는 나를 보며 박 셰프의 아내인 매니저 엘리아씨는 "선물을 주는 레스토랑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하며 웃는다. 식당 이름인 '아토보이(Atoboy)'의 '아토'가 순우리말로 선물이란 뜻이라면서. 식당이 선물을 준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선물이란 단어가 확 마음을 사로잡는다. 지난번 글에서 이번 사순절의 메시지 얘기를 했는데, 이 '선물이라는 말이 어쩌면 메시지인가 보다'는 확신이 들면서 말이다. 그럼 선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토보이처럼 좋은 재료로 건강한 믿음을 주는 사람. 입 안에서 감칠맛 나는 음식처럼 맛있는 사람. 꾸민 듯 꾸미지 않으면서 최고의 멋을 보여주는 멋쟁이. 접시를 꽉 채우는 겸손함. 기쁨을 주는 사람. 만나면 편안하게 자기를 다 열어줄 수 있는 사람.

맛있는 음식에 탐닉하는 나를 오래전에 어떤 사람은 비문명인이라며 경멸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한 가지에 집중하면 통달의 경지를 경험한다. 이번에도 처음 간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터득했다. 무엇보다 둘째 사위가 감탄해마지 않는 품격 있는 한국식당의 출현이 무조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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