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연이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구나 심하다. 전투에서 서로 버티고 있다가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걷잡을 수 없이 연속적으로 무너진다. 군중 심리에 의해 군대의 사기가 꺾이면서 허둥지둥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830년대와 1840년대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은 일종의 도미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엄청난 크기의 땅을 얻는 수확이 있었지만 말이다.
멕시코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정치가 안정되지 않아 모든 것이 어수선했다. 이 불안한 상태를 틈타 텍사스는 독립전쟁을 시작하여 1836년 멕시코로부터 독립하여 텍사스 공화국이 되었다.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으로부터 멕시코에 이주한 미국 출신 이민자들이 세운 공화국이다. 미국은 텍사스가 공화국으로 독립하는 것을 보고 멕시코가 형편없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텍사스를 미국에 합병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이 합병하기로 마음먹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국 출신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언젠가는 미국에 흡수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하겠다.
결국, 텍사스 공화국은 9년 동안 독립국으로 존재하다가 1845년 마침내 미국으로 합병되었다. 물론 멕시코는 강력히 항의했지만, 실제로는 더욱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고 말았다. 그리자 미국은 다른 멕시코 북부의 땅도 차지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은 멕시코 북부의 땅을 돈으로 사겠다고 제의했으나, 멕시코는 이 제의를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자 미국은 당시에 쿠바에 망명 가 있던 멕시코의 전임 대통령 산타 아나에게 접근했다. 미국은 산타 아나가 멕시코로 돌아가서 대통령 자리에 앉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대가로 산타 아나는 멕시코 북부를 미국에 팔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의 덕분에 멕시코로 돌아가서 대통령 자리에 앉은 산타 아나는 약속을 번복하고 돌변한 태도를 보이며 미국에 약을 올렸다. 약이 오른 미국은 멕시코를 손 좀 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1845년 이미 텍사스에 진군한 미국 군대는 국경에서 멕시코 군대와 대치하고 있던 중 미군 한 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를 핑계로 미국은 멕시코 진영으로 쳐들어가고야 말았다. 미국 국내의 일부 유력 인사들은 미국의 공격을 강력히 비판했지만, 결국 미국은 허약한 멕시코를 거세게 몰아붙여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를 함락했다. 이때 활약했던 미국 장군들이 나중에는 남북전쟁 때 서로 적으로 맞붙어 활약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멕시코와의 전쟁이 좋은 전투 경험을 쌓는 훈련장이 된 셈이다. 좌우간, 국토 전체가 미국에 점령당할 형편이던 멕시코는 미국에 항복했다. 미국은 멕시코 전체를 점령하기에는 다른 나라의 이목이 두려웠는지 멕시코 북부를 적은 돈을 주고 사들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1825만 달러를 받고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네바다, 유타 등 여러 지역을 미국에 할양해 준 멕시코는 영토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야 말았다.
한편 멕시코가 미국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긴 것이 나중에 1차 세계 대전과도 연관이 되기도 했다. ‘치머만 전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독일이 1차 대전 중에 주멕시코 독일 대사관에 전보를 보낸 내용이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독일은 멕시코를 독일 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독일이 승리하면 멕시코가 과거에 미국에 잃었던 땅을 되찾아 줄 테니 동맹국 편에 서달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일이 꼬이느라 이 내용이 영국에 의해 발각되었고, 영국이 미국에 알려 주는 바람에 미국은 두 번 생각할 틈도 없이 연합국 편에 서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되었며, 결국 연합국 측이 승리했다. 독일은 멕시코에 옛땅을 찾아 주겠다고 했다가 큰 코를 다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멕시코가 도미노 현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배경에는 미국이 영토에 대한 지나친 욕심 탓도 있었지만, 멕시코가 1821년 독립한 이래 정치가 혼란하여 갈팡질팡한 것이 더 문제였다. 정치가 어지러우면 망하는 지름길에 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