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주리주의 부시 스타디움. 4-4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투아웃 1.3루에서 세인루이스의 마무리 오승환(35)은 밀워키의 3번 왼손타자 트래비스 쇼를 상대했다.
1볼-2스트라이크에서 오승환이 던진 슬라이더는 좌타자의 무릎 쪽을 파고 들었다. 쇼는 정확한 타이밍으로 이 공을 받아쳐 3점 홈런을 터뜨렸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잘 던진 공이었지만 쇼는 슬라이더가 온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올시즌 오승환이 심상치 않다. 3일까지 12경기에 등판해 1승1패(방어율3.95)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76경기 6승3패 19세이브ㆍ방어율 1.92)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다. 9이닝당 피홈런(0.56→1.98), 1이닝당 출루허용률(0.92→1.39) 등 세부 지표가 악화됐다.
구위가 약해졌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올 시즌 오승환의 직구 평균스피드는 시속 93.5마일(약150.2㎞)로 지난해(시속 150.5㎞)와 큰 차이가 없다. 가장 달라진 건 마이크 매시니(47.사진) 카디널스 감독의 '오승환 활용법'이다. 올시즌 들어 오승환 투구 수와 이닝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쇼가 슬라이더를 받아친 장면은 오승환의 투구수가 25개에 달하자 힘이 떨어졌고 승부구로 슬라이더를 던질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단추를 꿰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승환은 지난달 2일 시카고 컵스전에 정규시즌 첫 등판했다. 1-0으로 앞선 8회 초 1사 1.2루에서 나선 오승환은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오승환은 3-0으로 달아난 9회 초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1사 1.2루에서 동점홈런을 맞았지만 9회 말 세인트루이스가 4-3으로 이기면서 간신히 구원승을 올렸다. 이날 투구수는 무려 38개에 이르렀다.
CBS스포츠는 '매시니 감독은 오승환에게 계속 멀티이닝 세이브를 맡길 것인가. 오승환은 메이저리그 마무리 투수 중 누구보다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등판을 거듭할수록 안정감을 찾았다. 지난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이틀 연속 세이브,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사흘 연속 세이브를 거뒀다. 모두 1이닝씩만 던졌지만 일주일 동안 5차례나 등판한 것은 상당히 무리한 일정이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스 입단 후 일본 한신 타이거스(2014~15년)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입성할 때까지 13년 동안 불펜에서만 뛴 오승환도 "일주일에 5번 등판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른 불펜투수들 부진도 원인
매시니 감독은 오승환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믿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지난해 7월 트레버 로젠탈(27) 대신 마무리를 맡은 오승환이 연투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씩씩하게 던지자 매시니 감독은 오승환의 활용폭을 늘리기 위해 고민했다.
매시니 감독은 지난해 9월1일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철학이 바뀌고 있다. 최고의 투수는 최고의 타선과 상대해야 한다. 오승환을 동점 상황에서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강력한 불펜투수에게 9회 1이닝만 맡기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얘기였다. 9회가 아니더라도, 세이브 상황이 아니더라도 마무리 투수가 상대의 중심타선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송재우 위원은 "매시니 감독의 주장은 '머니볼'이란 책에서 야구통계학자 빌 제임스가 내세운 이론이다. 이전에 보스턴 레드삭스가 제임스의 이론을 받아들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오승환 뿐만 아니라 다른 불펜투수들도 등판 시기가 들쭉날쭉하다. 부상에서 돌아온 로젠탈은 시속 99마일(약160㎞) 이상의 강속구를 뿌리고 있지만 연투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결과 세인트루이스 불펜진은 리그 하위권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오승환은 힘들어도 좀처럼 내색하지 않는 '예스맨'이다. 감독이라면 경기 막판 오승환이 한 타자라도 더 상대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매시니 감독은 매번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철학의 변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오승환을 혹사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세인트루이스와 오승환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