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제일 추운 12월의 토론토.
지금 생각하면 북한의 중강진같다고 말 할 정도로 그 곳의 추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 추위보다도 더 으시시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민온 지 10년쯤 되면 여자들이 가게하면서 하도 일을 많이 해서 이상하게 하나 둘 씩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암이 되어서 죽는다는 다소 엽기적인 루머였다.
주위의 몇 가정도 그렇게 되었는데, 남자는 혼자 살면 구질구질해진다면서 잽싸게 새 장가들을 갔다나.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이민와서 얼마나 고되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암까지 걸렸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
얼마전 토론토의 한 친구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느때 같지않게 목소리가 가라앉아서 좀 불안했는데 또 다른 친구인 S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병명은 대장암. 그녀는 가족들이랑 플로리다로 휴가를 잘 갔다 와서 얼마 안 있어 밤에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심상치않아 그 자리에서 개복을 하고 보니 이미 암이 많이 퍼져 있어서 대장의 일부를 잘라냈다고 한다.
친구 S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이민와서 처음 사귄 친구이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뭐 불편한 것이 없는 지 챙겨주고 관심을 쏟아주었다.
또 콘도에 살고 있는 나는 그녀의 집마당에서 자라는 오이,토마토,상추들이 신기해서 가끔씩 그 밭을 기웃거리기도 했었다.
밭도 깔끔하게 잘 가꿀 뿐 만 아니라 어찌 손이 크고 인심이 좋은 지 주위 사람들에게 잘 베풀고 여름이면 넓은 데크에서 L.A갈비며 꽁치,고등어 등 생선과 해산물 등 구워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베큐를 해서 잔치를 벌이곤 했다.
음식솜씨도 좋아서 고추장,된장,밑반찬,양식,중식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음식이 없고 어찌나 건강하고 체력이 좋은지 토론토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넓고 빠른 HWY401을 씽씽거리며 달리는 것이 처음 이민간 나에겐 그녀가 수퍼우먼으로 보였다.
서울에서 남편 퇴근시간이나 기다리고 애들 때문에 힘들다고 깽깽거리던 것이 그녀와 비교하면 소꼽장난 수준이었다.
늦게 난 막둥이 딸을 처음 국민학교에 보내면서 데려가고 데려오며, 다 큰 두 딸들 학교행사에 열렬하게 참석하고도 지친 기색없이 하루종일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교회일에 헌신했던 S. 전화를 한 친구의 말로는 그 좋던 몸에 체중이 약간씩 줄고 있다고 한다.
성격좋고 이해심이 많으며 남의 어려운 일에 몸소 나서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고 묵묵히 봉사하던 그녀의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리라.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황량하고 추운 토론토의 겨울에 처음 만난 친구가 아프다는 소식은 마음을 울적하게 했다.
항상 허허 웃으며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고 주위를 환하게 만들던 그녀.
이민 온 지 10년쯤되면 여자들이 골병들어 잘 죽는다는 뜬소문이 그냥 소문이기를 바랐었는데 S의 병소식을 들으니 이민 와서 여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중노동,향수 등 말로 다 표현 못하는 한이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병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하여 화가 났다.
이민이라는 또 다른 명제의 삶과 마주 서서 싸우는 여자들이여, 힘내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서 이 아름다운 땅에서 부디 아프지 말고 잘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특히 내가 이민 오자마자 얼마 안되어 작은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한국에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누구하나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S가 만사를 제쳐두고 병원에 와서 보살펴 주던 일을 잊지 못 하는데 나는 이렇게 멀리 이사와서 그녀가 아프다는데도 얼굴 한 번 못 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그녀의 병이 오진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안타까운 마음과 가 보지 못하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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