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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사연 칼럼]혁명을 꿈꾸는 낭만주의자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역사적, 철학적 사상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고교 2학년 때 남녀 고교생 모임인 청주독서회에서 였다. 『사상계』를 읽게 된 것이다. 거기서 놀라웠던 사실 하나는 군부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우는 이야기들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 후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1976년 청주도시산업선교회 강연에는 장준하 선생도 함께 와서 두 분의 강연을 모두 듣는 기회를 가졌다.

결국 나는 함석헌, 장준하 선생 영향으로 한신대학을 가서 목사가 되었지만, 함석헌 선생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수염을 휘날리며 하얀 고무신을 신고 씨알의 사상을 알리고 전하는 저항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함석헌 선생의 사상은 씨알 사상이었다. 망이, 망소이, 갈처사, 홍경래, 전봉준…. 이런 민중혁명가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밤늦게 앉아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듣던 대학시절도 있었다. 선생의 집에서 였다. 나중에 학교에서 제적되어 또 다른 스승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의 한 분이 서남동 해직교수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함석헌 선생 같은 분은 없었다. 행동하는 실천적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올 봄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당하고 감옥 가는 날, 42년 만에 한신대학 재일동포 학원 간첩단 사건으로 고통당하던 세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세 사람 중에 한사람은 대학원생이었고, 나머지는 신학과 학생이었다. 간첩 조작 사건의 무죄 판결. 얼마나 극적인 사건인가. 촛불시민혁명이 세상을 바꾸었다. 그래서 무죄를 받은 것이다. 100만 촛불이 200만 촛불이 되고, 1700만 촛불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켰다. 총 한방 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정농단 최순실과 박근혜 일당을 물리쳤다. 세상 살면서 이렇게 통쾌한 일이 어디 있었나. 공안검사 김기춘이 만든 간첩조작사건으로 네 명이 붙잡혀 갔는데, 김철현 이라는 당시 교포 학생은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데, 재심을 청구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지 못하고 고문의 후유증과 고통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오직 우리나라가 살길은 혁명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간첩으로 조작되어 갖은 고초를 겪었어도, 목사가 된 세 사람 김명수, 나도현, 전병생은 촛불시민혁명 덕분에 감사하다고 했다. 김기춘. 공안검사 출신, 청와대 비서실장을 했던 사람, 나쁜 사람이 씨알의 혁명 앞에 맥을 못 추고 잡혀갔다. 인과응보이다.

함석헌 선생의 씨알 사상은 민이요. 민중의 소리(Voice of the people)인 것이다. 억울한 민중이 소리쳐 하늘에 고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주신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신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3.1운동,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그리고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6.10항쟁과 촛불시민혁명이다. 함석헌 선생(1901~1989)은 20세기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저항운동가요 기독교 사상가이자, 민주화 운동의 횃불이었다. 함석헌 선생이 뿌린 씨알이 촛불시민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통일을 꿈꾸는 낭만주의자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 동포 여러분 함께 통일의 길을 가자.


김창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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