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은 나쁜 것이고 약은 좋은 것이다. 독은 사람을 죽이고, 약은 사람을 살린다. 정말 그런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정답이 아니다. 독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약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독이라는 한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작은 양으로 병을 고친다는 뜻도 담겨있다. 약이라는 한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놀랍게도 '독(毒)'이라는 뜻도 나타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독약(毒藥)'이라는 단어는 묘한 조합의 말이다. 독이 곧 약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독도 약이다.
약은 사람을 살리는 게 주목적이다. 당연히 약은 고마운 것이다. 그런데 약이 지나치는 순간에 문제가 된다. 독이 되어 버린다. 약의 남용(濫用)을 주의해야 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말이기는 하지만 '약 먹고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약 먹었니?'라는 힐난(詰難)도 결과적으로는 약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어찌 보면 약이라는 어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치중립적인 어휘다. 그래서일까 약에는 명약(名藥)도 있지만, 독약이나 사약(賜藥)도 존재한다. 왕이 약을 내리는 것을 사약이라고 하지만 그 약을 먹으면 죽는다.
어릴 때 '쥐가 아프면 무슨 약을 주어야 하나?'하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넌센스 퀴즈였다. 쥐약은 쥐를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이는 약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쥐를 먹은 고양이도 죽는다. 약이 죽음을 부르는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적 중 하나인 마약(痲藥)도 약이다. 실제로 마약은 약에 중요하게 쓰이기도 한다. 종종 뉴스에 보면 약 속의 마약 성분만을 추출해 환각제를 만들기도 한다. 마약이 나쁜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우리는 많든 적든 마약 속에서 살아간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Drug store'를 보고 마약을 파는 가게인 줄 오해했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어떤 나라에서는 일부 마약을 합법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니 이런 오해도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운 음식이 '마약김밥'이라는 말은 우스우면서도 이해가 되는 말이다. 마약으로 김밥을 만들다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곰팡이'도 사람들은 독이라고 생각했다. 곰팡이가 슨 음식은 당연히 버려야 했다. 탈이 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곰팡이는 페니실린으로 훌륭하게 재탄생한다. 독이 약이 되는 순간이다. 벌의 독도 한의학에서는 봉독(蜂毒)이라고 하여 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독이 곧 약이 되고, 약이 곧 독이 되는 모순적 사실은 우리의 삶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
나쁘다고 생각하고, 싫다고 생각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는 모두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다. 없어져야 하는 악(惡)이라고 생각되는 것조차 제 역할이 있으며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귀한 존재일 수 있다. 무조건 독이라고 하여 내치려 하지 말고 내게 보여주는 교훈을 들어야 한다.
한편 내게 도움이 되는 약인 줄 알았던 일들도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지나침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알맞음의 미학은 늘 어렵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기도 하다. 독을 약으로 바꾸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약을 약으로 남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약이 되는 인생이어야 한다. 이게 바로 독과 약이 보여주는 세상이다. 세상에 나쁜 것은 없다.